'청춘'이 정말 좋은 것일까?수많은 불안과 걱정, 근심 덩어리가 혼재되어있는 그때. 이 '혼란'을 포장하기 위해 예쁜 말로 꾸며낸 것은 아닐까. 당연히 '젊음'은 좋다. 그것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때의 체력과 건강, 에너지 따위는 그 어느 시절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게 사실이다.
다만, '젊음'과 '청춘'은 다르다. 외적인 것은 잠시 번외로 해보자. 그 당시의 내면은 어떠한가. 나의 청춘은 속이 뒤틀려 있고 몹시 어지러운 상태였다.
마냥 어렸을 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것 때문에 20대는 10대 때보다 더 복잡하다. 「어떤 것에서는 어른 취급, 어떤 것에서는 또 애 취급.」 이게 20대를 대표하는 한 문장인 것 같다. 갓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미성숙한 청춘에게 주어지는 간섭'들은 어떠한가. 모두가 '이 방향이 올바른 길'이라며 손짓한다. 그리고 그중 어느 선택을 하던 '책임'이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갈고리질을 덧댄다. 모든 청춘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갈고리에 우리의 아가미를 내어주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덜 아픈 쪽으로.
돌이켜보면 재미있고 소중한 추억들이긴 하다.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나의 20대 역시 나쁘지 않았다. 신나게 놀았고, 처절하게 실패도 많이 했다. 그때였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후회막심한 행동과 실수도 가득하다. 소위 말하는 것처럼, 나름 '찬란한 시기'였다.
학교 다닐 때는 수업 듣고 알바를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알바는 종류별로 많이 해봤다. 편의점과 포장마차도 꽤 오래 했다. 방학 때마다 고깃집에서 불판을 바꿔주는 일명 '불갈이'도 했었는데, 이따금 술 취한 아저씨들이 고생한다며 팁을 주실 때가 있었다. 아참, 이 시절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뒤라 모교의 선생님들이 회식을 오시기도 했다. 그때 만취해서 돌아가시던 선생님들이 1만 원씩 쥐어주셨을 때의 기분 좋은 퇴근길은 잊히지 않는다. 팔에 입은 화상은 영광의 상처였다.
그런가 하면 무모한 도전도 많이 해봤다. 한 번은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무려 부산까지 긴 일정을 다녀오기도 했고, 하루 1만 원 예산을 한도로 기차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때도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애니콜 가로본능 휴대폰'으로 몇 장 찍어둔 사진이 우리들 추억의 전부다.
그 기록되지 않은 명장면들. 그리고 또 어설프게 남은 추억의 조각들을 이따금 살펴본다. 당연히 그리운 시절이며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렇지만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요즘의 나는 혼란을 망각하며 지낸다. 어쩌면 통증에 익숙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처음 경험하는 것들에는 설렘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 안에는 모종의 불안감(혼란)도 늘 자리한다. 다양한 것들을 새로 시작하고, 그 시작한 것들로부터 혼란이 가중되며 모든 사람들은 무거워진다. 이것이 늙어가는 것의 정의일까? 그렇다면 나는 괜찮다. 나는 차라리 무거워진 지금의 나를 택하겠다.
어깨에 지워지는 혼란들을 보자니, 마치 '덧댄 글씨'와도 같다. 뭐랄까, 우연히 새하얗던 종이 한 장을 낚아챈 기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백지에 이름 석자를 새겨 넣고 나의 것인 양 내 이야기를 마구마구 적었다. 그리곤 이름 주변으로 수많은 것들을 추가하고, 기록하고, 더해왔다. 나중에는 흰 종이가 깜지처럼 쌔까매졌다. 그렇게 청춘을 지나 보니, 더 이상 채워 넣을 공간이 없다. 결국은 깜지 위로 글자를 덧쓰는 지경이 된다. 거기에 한번 더, 또 한 번 더, 덧칠하다가 말미엔 뒤엉킨 글자들이 커다란 뭉텅이로 남았다. 이미 여러 겹을 거친 후에는 혼란도 없다. 양면이 모두 흠뻑 잉크에 적셔진 무거운 종이 한 장만 있을 뿐.
더 이상 무엇을 덧쓰고, 무엇을 덧칠해도 이제는 괜찮은(상관없는) 이유다. 돌아갈 수도 없는 찬란한 20대이지만, 그렇다고 또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나의 청춘…. 그저 '조금 덜 까맣던 시절'을 온전히 기억하는 것만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