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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선생 Dec 22. 2021

우리가 아는 그 크리스마스를 만든 작품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리뷰


에브니저 스크루지는 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이지만, 마음씨가 곱지 않고 야박하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스크루지도 그 점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멍청하고 세상을 제대로 살 줄 모른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파티를 하자고 찾아오겠다는 조카의 제안도 거절하고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것에 몰두하며 시간을 낭비한다고 쏘아붙이며 잠에 듭니다.

그날 밤, 스크루지의 방으로 먼저 죽은 동업자 말리가 찾아옵니다. 죽은 말리가 찾아오다니 스크루지는 깜짝 놀라고 말죠. 온몸에 쇠사슬을 친친 감은 말리는 ‘너는 지금 죽어도 나보다 더 많은 쇠사슬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두려움에 떨던 스크루지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말리는 내가 떠나고 난 뒤 세 영혼이 찾아올 것이라고 안내하고는 스르륵 사라집니다.

세 영혼은 각각 스크루지의 과거, 스크루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 스크루지가 죽은 뒤에 펼쳐질 미래를 보여줍니다. 구두쇠가 아니었으며 착하고 행복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했던 에브니저, 빈부와 지위를 가리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신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따뜻한 한때를 보내는 스크루지의 이웃들, 스크루지가 죽은 뒤에 구두쇠 영감 가게를 터니 신나는군 하면서 가게를 도둑질하는 범죄자들까지. 에브니저 스크루지는 이들을 보며 구두쇠 같은 태도를 버리고 베푸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면서 펑펑 웁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성탄절 아침이었고요.

우리가 아는 그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최초로 선사한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크리스마스의 세속화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많은 연구자들이 지금의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와 이미지가 만들어진 원인으로 찰스 디킨스를 주목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인데요.

첫째, 크리스마스는 분명히 종교적 의미를 띤 기념일인데도, 그 위에 비종교적인 이미지도 함께 입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신자도 아닌 사람들도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합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기독교 전통을 강하게 이어온 나라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걸까요? 디킨스가 성공한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요. 실제로 디킨스가 이 소설을 쓰던 당시에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19세기면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세속화가 진행됐을 때니까요. 하지만 디킨스는 이 소설 안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날, 행복을 공유하는 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의 이미지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세속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둘째,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선 크리스마스가 지닌 종교적 색채를 그대로 이어가기도 합니다. 바로 기부와 선행이라는 부분이죠. 스크루지는 다른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지도 않고, 돈을 쓰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도 매우 인색하게 굽니다.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은, 특정한 이유가 있다기보단 종교적 지침에 가깝습니다. 이전 예수 탄생 기념일에 종교인들이 그런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종교의 권능을 믿지 않는 사회가 됐을 때, 여전히 사람들이 선행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킨스가 이 소설에서 쓰는 이야기 구성 방식은, 영혼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차용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반성입니다. 나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평가를 받는 사람인가 직시하게 하는 것이죠.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디킨스가 크리스마스를 다룬 에세이와 소설들입니다. 디킨스는 작가 생활을 하는 시기 거의 매해 크리스마스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앞에서 보시는 이 책에 그 가운데서 유명하고 의미 있는 글이 실려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길고 대표적인 것은 스크루지 이야기인 크리스마스 캐럴이고 대체로 비슷한 주제가 변주된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의 ‘세속화 과정’을 직접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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