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영롱한 무지갯빛 어린이들

by 청량음료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히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 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이 책을 사랑한다. 이 책의 저자 가브리엘 루아는 1900년대 초반 캐나다에서 태어난 교사 출신의 작가이다. 20살 무렵부터 8년간 교사 생활을 했는데 그때 만난 여섯 아이들 이야기를 묶은 책이 바로 ‘내 생애의 아이들’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곳은 우리 동네의 치과였다. 한동안 치과를 다닌 적이 있는데 그곳의 책장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는 읽기 시작했다. 어 재미있네? 치과에서는 다 읽지 못해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다. 그리고는 제인 에어에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사랑하는 책이 되었다. 가브리엘 루아의 문장은 하나하나 탐욕스럽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을 수 없도록 아름답다. 모두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도록 탐이 난다. 문장마다 가득한 서정적인 표현에, 눈에 선하게 잡힐 듯 그려지는 아이들의 표정, 그들의 달큼한 체취마저 느껴지는 듯한 묘사에 가슴이 뭉클하다. 20세기 초반의 캐나다는 땅은 광활한데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각국에서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였던, 지독하게 가난한 이민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어느 나라나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시절이었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나는 따뜻하다. 난 아이들의 작은 책상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애정 어린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는, 그리스 여신 같은 옆모습을 지닌 가브리엘 선생님의 젊다 못해 어린 실루엣을 상상할 수 있다. 가브리엘 선생님 옆에서 그녀와 같은 시선에서 사랑스러운 꼬맹이들을 바라보고 싶고 그들을 한 명 한 명 안아보고 싶다. 하나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아이들인 그들은(메데릭만 빼고) 성탄절에 사랑해 마지않는 선생님에게 선물을 주고 싶으나 그럴 형편이 못되어 세상이 무너지는 듯 슬픔에 빠지고 극적으로 마련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휘몰아치는 폭설을 뚫고 달려와 세상을 다 얻은 듯 줄 수 있음에 기뻐하고,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를 천부적인 재능으로 표현해 내어 절망의 끝자락에 서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며, 모든 선생님들의 기피 대상인 러시아 출신의 무두장이 집안의 둔한 아이였으나 기막힌 필사 솜씨를 지녀 가혹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마침내 녹여내었고, 겨우 10살인데 아버지는 멀리 돈 벌러 갔고 임신한 어머니는 유산 징후로 수개월 동안 일어서 있을 수 조차 없어 모든 집안 일과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는 일까지 떠맡아 세상의 근심 걱정은 다 지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집을 잘 보고 있으며, 부잣집 아들이지만 어머니는 아주 어릴 때 떠나버렸고 아버지는 세속적인 속물이라 마음 둘 곳 없던 안쓰러운 사춘기 소년까지...

이 책의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빛을 발한다, 형형색색 다양하고 영롱한 빛을. 아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 빛을 발한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러하다. 내가 이렇게 가브리엘 선생님의 글에 빠져든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운 문장들과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옛 제자들과의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 전 1년 간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던 적이 있다. 직장생활로 멈추었던, 원래 계속하고 싶었던 러시아어 공부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는데, 마침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뒤늦게 군대를 갔고 아빠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고향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부산으로 내려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부산 국제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과가 신설되는데 강사를 뽑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첫 제자들을 만났다. 처음엔 좋은 경험 삼아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들을 만나지 않는 주말에도 그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난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청소년들은 무서워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정말이지 너무 이뻤다. 사랑스러웠다. 한 아이 한 아이 각각 그들만의 영롱한 빛이 있었다. 그것이 느껴졌다. 그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늘 설레었다. 1년 간 다른 언어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러시아어과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는데, 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이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주말부부까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러 사정상 이제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 눈물이 절로 날 것 같아서 마지막 수업시간엔 끝인사조차 못하고 메일로 인사를 건넸다. 내가 그 아이들을 가르친 시간은 고작 1년이었는데, 아이들은 날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왔다. 국제고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우리 반에서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경찰대 등에 입학한 아이들이 나왔다. 그 친구들은 ‘선생님 덕분에 수능에서 제2외국어 만점 받았어요’ ‘선생님 때문에 교육학과에 들어갔어요’라는 말을 했다.(내 자랑 맞다ㅋㅋ) 진심으로 그 아이들이 잘되길 바랐다. 그때 열일곱이던 녀석들이 이제 서른이 다되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한 아이들. 그런 제자들을 또 가졌으면 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다.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모든 아이가 각자의 영롱한 빛을 가지고서 태어나지만 그들의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 빛이 더욱 영롱해질 수도, 서서히 꺼져버릴 수도 있다. 그중에서 특히 연약한 어린 시절, 너무나 상처받기 쉬운 솜털과 같은 어린 시절에 만난 선생님이 가브리엘 선생님과 같이 애정에 가득 찬 눈길로 바라봐 준다면 분명히 그 아이는 행운아일 것이다.

가브리엘 루아의 글에 반해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았다. 모두 훌륭했지만 그래도 ‘내 생애의 아이들’이 나는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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