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 평생학습관의 어린이실에 들러 여느 때처럼 건이가 읽을 책을 잔뜩 빌린 날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그녀의 대표작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 옆에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라는 처음 보는 제목의 책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유명한 작가의 책이므로 이 책도 건이에게 읽혀 봐야겠다 생각하며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대출하여 왔다. 보통 나는 건이를 위해 빌려온 도서관 책들을 많이 읽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책이 궁금하여 구석방으로 들고 가서는 읽기 시작했다. 집에는 건이와 나 밖에 없었고 건이는 거실에서 뭔가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큰 충격에 휩싸여서 눈물을 펑펑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스코르판이라는 동생과 요나탄이라는 형,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스코르판은 기침이 너무 심하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누워만 지내는 병약한 동생이었다. 스코르판에게는 요나탄이라는 동화책 속의 금발 왕자님 같은 외모를 가진 아름다운 형이 있었는데, 그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정의롭고 용감하며 착하기까지 하여 모두의 칭송을 받는 그런 소년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생에게 넌 죽지 않을 거라고 하얀 거짓말을 하기보단, 이 세상에서 노상 그렇게 기침에 시달리며 앓느니 편안한 저 세상에서 사는 게 훨씬 나을 거라며 동생을 꼭 끌어안고는 위로할 줄 아는 속 깊은 형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하필 안 계시던 때에 두 형제의 집에 불이 났고, 요나탄은 움직일 수 없는 동생을 업고서 불길을 피해 뛰어내려 동생을 살리고는 자신은 죽고 만다. 죽어가면서 슬퍼하는 스코르판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낭기열라에서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사후 세계가 특이한데, ‘낭기열라’와 ‘낭길리마’ 두 군데로 나뉘어 있다. 죽은 사람이 바로 가는 곳이 낭기열라, 낭기열라에서 또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 낭길리마이다. 나는 스웨덴 민족의 사후 세계관이 이러한 줄 알았는데 아마 아닌 듯하다.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창조해낸 사후 세계인 것 같았다.) 우리의 요나탄이 그렇게 갑자기 죽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 높은 곳에서 기꺼이 뛰어내리는, 안타깝고도 기특한 모습에 진짜 엉엉 울었다. 건이한테 들키면 창피할 것 같아서 소리 내지 않고 우느라 혼났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이 등장하자마자 죽다니.. 그리고 스코르판도 곧 병을 못 이기고 낭기열라로 건너간다. 낭기열라에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두 형제는 반갑게 만나게 된다. 알고 보니 이 책은 가슴 저미는 사연으로 죽은 형제가 사후 세계에서 겪는 모험 이야기였다. (졸지에 자식을 둘 다 잃은 엄마는 어찌 살지.. ㅜ) 앞부분만 읽고서는 내가 먼저 읽기 진짜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절대 건이에게 지금은 읽히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건이는 아기 때 자장가를 불러주면 울었고,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노래를 불러주면 울었고, 클레멘타인 노래를 불러줘도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였다. 안네 프랑크에 대한 재미없는 전기 이야기를 영어 시디로 듣는 와중에도 몰래 눈물을 훔치는 아이인데 절대 안 될 말이었다.
낭기열라에서 벌어지는 두 형제의 모험 이야기는 보통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느 두 형제의 모험 이야기와 비슷하다. 단지 배경이 저 세상일 뿐이다. 평화로운 낭기열라에 나쁜 놈 텡일이 등장하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낭기열라에 군림하여 폭압정치를 펼치는데, 요나탄은 저 세상에서도 용감하여 텡일로부터 낭기열라를 구출하려고 용맹스럽게 싸운다. 다행히 요나탄은 혼자가 아니다. 어둡고 무서운 시절 속에서도 그를 도우려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리고 스코르판도 힘껏 사랑하는 형을 돕는다. 결국은 독재자 텡일 무찌르고, 텡일 뿐 아니라 ‘카틀라’라고 하는 무서운 용까지 죽임으로 낭기열라를 완전히 구원하는 듯했다. 그런데 반전.. 알고 보니 요나탄은 카틀라와 싸우는 도중에 그의 불꽃에 몸의 일부가 닿았는데, 그 불꽃에 닿으면 몸이 점점 굳어져 가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나을 수도 있는 거 아냐?” 나는 흐느끼면서 말했습니다. “아냐, 스코르판, 이건 결코 낫질 않는 거야. 낭길리마에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제야 나는 요나탄 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또다시 혼자 떠나려는 것입니다. 나만 남겨두고 낭길리마로 가려하다니... “절대 안 돼! 나를 두고 혼자서 낭길리마로 가지 마!” 나는 미친 듯이 부르짖었습니다. “그럼 나랑 함께 가고 싶니?” “물론이야. 형이 어딜 가든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진작부터 말했잖아.”
이 두 아이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스코르판은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는 형을 업고는 낭떠러지로 간다.
“형, 나 해낼 수 있어.” “우리 스코르판은 정말 용감하구나. 그럼 빨리 해치우자.” “잠깐만이라도 형이랑 여기 이렇게 앉아 있고 싶어.” “좋아, 하지만 너무 오래 끌면 안 돼.” “알았어.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만 기다릴게. 아무것도 안 보일 때까지만.” .....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내 발아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곧장 어둠 속으로 떨어질 테고 그러면 모든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사자왕 스코르판, 무섭지 않니?” “아니..... 형, 사실은 무서워. 하지만 해낼 수 있어. 지금 바로 할 테야. 그러고 나면 다시는 겁나지 않겠지. 다시는 겁나지..........”
“아아, 낭길리마! 형, 보여! 낭길리마의 햇살이 보여!”
이렇게 이 긴 호흡의 어린이 소설은 끝이 난다.(너 어린이 소설 맞니?ㅠ) 소설의 초입에서 펑펑 울었던 것처럼 마지막에도 머리가 멍해지며 또 펑펑 울었다. 이 가슴 아픈 두 아들내미들을 어찌할꼬... 이것이 자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것도 동반자살이라니.. 실제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이 소설을 썼던 1973년도에도 많은 비판이 따랐다고 한다. 어린이 소설에 동반 자살이라니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생각에 일부는 동의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라고 난 후 이 책을 보여주어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고 말이다.(난 건이가 이 책을 발견할세라 바로 다음 날 반납을 해버렸다)
형제애란 어떤 것일까. 나에게는 두 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는 내가 엄마와 전투적으로 싸우느라 그 사이에서 여동생이 파편을 많이 맞았었고, 또 나 자신의 문제들에 골몰해 있어서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마음으로는 다른 어떤 친구들보다 내 동생을 사랑했다. 동생은 자주 자기 몫의 간식을 다 먹고 난 후에 아직 반도 먹지 않은 나에게 늘 “언니야, 쪼끔만...” 했었고, 먹는 것에 별 뜻이 없던 나는 항상 선뜻 내 몫을 왕창 내어주곤 했다. 6살쯤의 어느 날에는 내 동생이 장난으로 담벼락에 바짝 붙여 주차되어 있던 트럭 사이를 지나려다 오도 가도 못하게 끼여버리자 그 모습을 본 나는 내 동생이 죽을까 봐 대성통곡을 했었던 기억도 난다. 암튼 난 내 방식대로 내 동생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둘 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에는 각자의 삶에 바빠 예전처럼 자주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매가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 집에도 성별이 같은 두 아이가 있다. 완이는 건이 형아만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 어떤 친구들보다 형아와 노는 게 제일 신난다.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형아가 집에 왔다고 하면 모든 놀이를 중지하고 친구들을 놔둔 채 집으로 휑하니 가버린다. 그 덕에 엄마 아빠는 자주 둘이서만 볼일을 보러 나갈 수 있다. 집에 tv가 없고 마음대로 게임을 할 수 없어도 둘은 어떻게든 놀이를 개발해 내어 낄낄거리며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둘이 나란히 잠자리에 들어도 30분이고 1시간이고 어둠 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도 재미있게 나누는지 결국 엄마의 불호령을 듣고서야 겨우 조용해진다. 얼마 전 두 아이에게 물었다.
“건아, 건이는 완이를 사랑해?”
“음.... 잘 모르겠어요..”
그래 건이는 솔직하기에는 좀 컸다. 쑥스러울 거다.
“완아, 완이는 형아를 사랑해?”
“네!”
0.1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그리고 난 완이의 그 대답이 진실이라는 것을 잘 안다. 사이좋은 형제를 아들들로 두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신나게 노는 두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의 8할이 큰아이 건이의 공이라는 것을 안다. 형제애는 둘째 치고라도 건이가 한 번도 동생을 먼저 때린 적이 없고, 많은 첫째들이 그렇게 하듯 동생에게 심부름을 시킨 적도 없으며, 놀린 적도 약 올린 적도 없기 때문에 완이가 형아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것일 거다.
형제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피로 맺어진 끈끈함이다. 같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누군가와 같은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함께 놀고 때로는 싸우고, 어떨 땐 나보다 더 잘되길, 행복하길 바라게 되고, 그의 아픔에 더 마음 아파하는.. 부모님 외에 내가 잘 되길 가장 바라는 누군가가 아마도 형제이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요나탄과 스코르판처럼 그런 가슴 아픈 형제애를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둘의 형제애는 너무나 크고 깊었지만 또 너무나 가슴 아팠다. 둘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둘 사이에 더 큰 형제애가 생겨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난 건이 완이가 지금처럼 서로 함께할 때 늘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했던 시절이 참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금세 커버리는 데다가 중고등학교 때는 바빠서, 대학 때는 이미 집을 떠나게 되어 그 애와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건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아마 완이도 형아와 신나게 놀 시간이 점점 줄어들겠지. 그리고 친구들이 둘 사이에 점점 더 많이 끼어들게 되겠지. 어른이 되면 아마 각자의 삶에 바빠 더 소원해질 테고, 나이가 들면 가끔 생사 확인이나 하고 지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둘의 형제애가 평범하게 유지된다면 난 만족한다. 어떠한 결핍이나 기구한 사연들이 우리 두 아이에게 덮쳐 유달스레 남다른 형제애를 가지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중한 대상이 달라지게 되고 그 대상이 바뀜에 따라 형제애 또한 자연스럽게 퇴색하게 되는 것이 마땅한 듯하다. 그저 어린 시절 함께함으로 행복했고, 나이 든 지금도 여전히 좋은 형, 좋은 동생이며, 언제나 행복하길 마음으로 조용히 빌어줄 수 있는 두 형제, 그런 우리 사랑하는 아들들 건이, 완이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