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량음료 Apr 14. 2023

3. 심심하기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큰아들 건이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하루종일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무엇을 하는지, 밥 먹으라고 부르지 않으면 두문불출, 문지방을 건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우리 건이가 사춘기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고는 큰 마음먹고 신경을 껐다. 물론 쉽진 않았다.


어느 날 우리 아들들도 그다지 절제력이 강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일정 시간 외에는 컴퓨터와 핸드폰을 안방에 가져다 놓도록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학 문제집 2장 푸는데 때로는 2시간이 걸리던 큰아들이 20분 만에 끝내고 나왔던 것이다.


부활절 방학기간이다. 일정 시간 외에는 아이들의 노트북은 안방에 놓여있다. 또다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큰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에서 나와 있다. 동생과 베개싸움을 하고, 장기를 두고, 보드 게임을 한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 중 2라서, 사춘기라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서 그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컴퓨터 게임과 영상 보는 시간이 너무나 달콤했을 뿐.



키 165가 넘는 아들이 천진하게 베개 싸움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한국이었다면 학원에 가느라 언감생심 베개 싸움은 꿈도 못 꾸었을 텐데.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고생할지언정 여기서는 환한 낮에 베개 싸움을 할 수 있어 좋다.


베개 싸움도 하고,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즐겨보던 책도 다시 집어 들고, 보드 게임도 하고. 방학 동안만이라도 그렇게 좀 심심하여라 아들들아. 건강해서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2. 바셀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