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가르는 순간들

운명을 가르는 '1'

by 여름은하


해외법인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많은 현지직원들이 정시 출근시간을 지키지 않고 몇 분, 몇십 분까지 늦는 일이 점점 잦아지면서 경영진은 출입통제 시스템에 근태 판정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오전 8시 59분 59초까지 출입증을 정문에 찍으면 시스템에서 정상 출근으로 판정된다. 하지만 9시 00분 00초부터 인식되는 출입증의 주인은 지각자로 판정되어 그 명단이 자동으로 인사팀과 직속상사에게 이메일로 발송되고 인사고과에 페널티가 적용된다.

여기서 심오한 철학적 문제가 제기된다. 9시 00분 00초는 8시에서 9시로 넘어가는 시간의 경계로 볼 수 있어 아직 9시를 ‘넘어선’ 것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까지는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정시 출근 시간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때까지 출입증을 찍은 사람은 정상 출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물론 이런 엄격한 철학적 접근을 주장한 스토아학파들은 그날 9시 00분 00초에 출근한 직원들이었다). 결국 법인은 9시 00분 01초부터 지각으로 인식하도록 출입통제 시스템을 업데이트했고 직원들은 1초의 여유를 더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직원들은 좀 더 욕심을 부려본다. 회사가 초단위로 근태를 관리하는 것은 쪼잔해 보일 수도 있다는 ‘대국적 경영론’으로 경영진을 도발한다(물론 이 대국적 경영론 컨설턴트들은 그날 9시 00분 xx초에 무더기로 출입증을 찍은 직원들이었다). 결국 직원들의 회사를 향한 열정에 감명을 받은 경영진은 똥은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합리적 판단하에 최종적으로 지각 판정시각을 9시 01분 00초로 양보했다. 이 9시 뒤에 당당히 붙은 1분은 더 이상 어떤 논리로도 흔들 수 없는 지각의 마지노선이 되어 더 이상의 이의 제기는 없었다.

이 후로 이 지각 판정 시각 직전의 1초가 인사고과의 근태 성적을 좌우하게 되었다. 1초 전에 출근하면 정상 출근, 그 후로는 지각으로 판정되어 한 분기 내 3번의 지각 판정을 받게 될 경우 진급심사에서도 제외되고 인센티브 평가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사소해 보이는 1이라는 숫자가 임계점 앞에서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10초대를 뚫고 9.95초를 기록한 미국의 육상선수 짐 하인스의 이 0.05초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 시간의 단축으로 그는 인류 최초로 9초대에 도달한 육상선수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10초 플랫(flat)의 벽에 막혀 이를 인류의 한계로 타협하고 있던 당시 육상계에서 추가로 단축된 이 찰나의 순간은 한계의 벽을 돌파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1분 혹은 1초가 늦어 아침 출근 지하철을 놓친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1표에 뒤져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1점이 부족해 불합격하는 사례도 많다.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1초가 닫히고 있는 경의중앙선 왕십리역 출근길 지하철문 앞에서는 슬로모션으로 흘러가며 엄청난 존재감을 품어낸다. 이 순간의 1초와 평상시의 1초는 동일한 시간단위이나 전혀 다른 가치를 갖는다.

성취를 이루지 못한 대부분의 노력들은 바로 이 1 앞에서 좌절된 것들이다. 선두그룹에 몰린 많은 무리들이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을 하고 있지만, 이 1을 기준으로 승패, 혹은 성패는 갈리게 된다. 사소해 보이는 하나로 그동안 힘써왔던 노력이 좌절되거나 막혔던 길이 열리는 모든 순간.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보겠다.


필자는 큰 성공도 실패도 없이 ‘어중간한’ 수준의 노력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이 어중간한 경험에서 돌이켜보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 것 같은 순간들이 참 많았다. 이 후회를 담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글을 몇 자 적어본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우리 대부분이 한 번쯤은 다 이런 아쉬운 순간을 회상하며 후회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마음으로 함께 다시 각오를 다잡아보자. 이제 지금까지의 노력에 ‘1’만 더해서 멋지게 상황을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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