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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이 트렌드가 됐다. 근데 이제...

20250113

by 상작가


요즘 HSP라는 단어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초민감자라는 개념인데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 유튜브에 그 단어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테스트도 함께. 나도 그 테스트를 해봤다. 예민한 편이지만 극단적이진 않은 정도로 나왔다. 평소 불안감이 높다고 생각해해 봤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고 결과가 나온 것.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테스트는 아니니 너무 믿을 것도 못된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HSP, 즉 초민감자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 단어가 처음 나오고 테스트 유알엘이 공유가 된 후 내가 본 것은 그 글 밑에 달린 댓글들이다. 댓글에 어떤 반응이 있냐 하면 '본인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이거 내 얘기다.' 같은 류의 댓글이 꽤 달렸다. 난 이런 댓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이런저런 타이틀이 달린 테스트 결과의 댓글창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건 MBTI다. 근데 그냥 MBTI 유형을 나눈 글보다 내가 집중하는 건 특정 장점 영역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신다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자신을 특별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그러니까 어떤 특징들을 열거해 놓으면 꼭 내 얘기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근데 이 특징들이라는 게 어찌 보면 부정적인 내용들일 경우도 있는데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라고 밝힌다. 가령 위에 말했던 초민감자라는 건 그다지 좋은 칭호가 아니다. 너무 예민하다는 걸 나타내는 지표인데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고 자기 얘기라고 한다. 왜 그럴까.


내가 생각하기에 요즘 사람들은 예민함을 더 선호한다. 더 정확히는 '예민한 나'를 선호한다. 둔한 사람보다는 신경이 예민해서 빠릿빠릿하고 그 예민함을 토대로 감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나로 보이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을 정말 힘든 상사로 보면서도 그가 보여주는 예민함덕분에 그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사람들 중에 당연히 예민함으로 인해 진짜 고통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실제 그런 사람들보다는 그 프레임에 자신을 짜 맞추려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가령 MBTI 검사를 할 때도 본인의 진짜 성격이 결과로 나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상의 MBTI가 나온다는 것처럼.


요즘 아이들의 SNS 프로필에 우울증이나 ADHD 같은 진단명을 적어 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중에 진짜로 정신과에 가 의사의 진단을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긴 하다. 내가 그 현상을 지적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경계성 지능장애 같은 명칭도 요즘 간혹 보이는데 그걸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더라. 그런 글의 댓글에는 자기가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있지만 보통은 주변 사람들 중에 그런 경우가 있더라는 댓글이 더 많다. 통계적인 수치는 없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내도 괜찮고 아니고의 척도가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최근 등장한 것이 저 초민감자라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실제 의학계에서는 좋은 느낌으로 쓰는 단어가 아닐 텐데.(심지어 실제 의학계에 있는 단어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마케팅을 위해 또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되어 가는 느낌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잘잘못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그냥 요즘 트렌드가 그렇다더라 싶은 내 개인적인 견해다. 그래서 그다음을 예측해 보는 게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일. 예민함이 서서히 시동을 걸고 너도나도 예민한 사람을 자처하면 아마 그런 예민함에 대한 책들이 나오겠지. 그런 예민함을 이용하라는 둥의 자기 계발서 같은 거. 그러고 나면 정반합을 따라 예민함의 반대급부들이 나오겠지. 감각이 둔한 사람. 혹은 둔감한 것이 좋으니 그렇게 되는 방법론적 이야기들. 그리고 또 흐지부지. 그다음은 또 새로운 신경증이나 증후군, 공포증 같은 것들이 새록새록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예민한 편인데 그 예민함을 자랑하고 싶진 않다. 너무 피곤하니까. 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마저도 뭔가 으스대는 느낌으로 보일 수 있겠네. 하나 아냐. 난 테스트 결과 그냥 그런 사람으로 나왔으니까 어디 가서 자랑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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