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31
디자인 얘기다. 나는 주로 전단지를 만든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주문이 별로 없다. 그래. 요즘에 전단지로 홍보하는 경우가 점점 없어지긴 하지. 광고 전단지가 부착되어 있는 걸 사람들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근데 오늘 글 쓰고 싶은 내용이 내가 디자인을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아니다. 디자인 고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일을 한지 이제 거의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잘 포기가 안된다. 무엇에 대해? 고객의 디자인 감각에 대해.
디자인을 하면 진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디자이너가 아니고서야 거의 고객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하게 되지 않나. 그러다 보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디자인을 하고 이것저것 해봐야 고객의 한 마디에 결과물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전단지조차 그렇다. 아니, 오히려 소상공인을 더 많이 상대하는 전단지 디자인이 훨씬 더 그렇다.
작업을 하면서 수정사항을 받으면 납득이 되는 경우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일단 내용부터 기본 추가하고 들어간다. 내용 추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디자인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한다. 말도 하지 마. 내용 추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근데 내가 만난 고객들의 8할은 내용을 거듭거듭거듭 추가함. 왜냐하면 같은 돈 내고 전단지 만들 때 내용을 많이 넣어야 이득이라고 생각함. 정말이야. 진짜 그래. 여백 같은 거 관심도 없음. 그 내용 추가로 전체 디자인이 뒤틀린다고 나는 스트레스받는데 사실상 그럴 필요 없음. 이 사람들은 여백에 그냥 쑤셔 넣어주길 바람. 그걸 내가 디자인으로 잘 풀어서 보기 좋게 넣어주면 그걸 더 좋아하고. 아니 사실 그걸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당히라는 게 있는데 진짜 과할 정도로 내용을 쑤셔 넣는다. 요청사항도 그냥 어디, 거기, 빈자리에 넣어주세요다. 이 얘길 들으면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서든 조화롭게 넣으려 하겠지만 실상은 진짜 그냥 투박하게 넣어도 됨. 관심이 없음. 돈 주고 디자인을 맡길 정도의 사람이면 나름 신경 쓴다는 얘기일 텐데 결과물의 퀄리티에 정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나도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가 참 어렵다. 고객들은 디자인에 문외한이라고. 이 사람들은 그저 글자 꽉꽉 채운 전단지를 나눠주면 모든 사람들이 그걸 받아 읽을 거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납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솔직히 그렇잖아. 요즘 같은 시대에 모든 게 다 디자인인데, 아이폰 디자인 좋아서 산다고 해놓고 왜 감각들은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서 편집샵은 왜 가고 자동차 디자인은 왜 그렇게 따지는데. 난 이것도 그런 거라 생각해. 사람들 대부분이 아이폰 디자인이 좋아서? 외제차 디자인이 좋아서 그걸 살까? 아니, 그냥 그 디자인을 알아보는 몇몇의 사람들이 대단하니까 그걸 흉내 내는 거겠지. 톰브라운 같은 거야. 지디가 입는 건 취향의 선택이지만 그걸 보고 따라 사는 건 어쭙잖은 흉내인 거잖아.
이걸 다 알면서도 고객들의 디자인 감각에 대해 포기가 되지 않는다. 받아들여.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아는 척하고 싶을 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