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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작가 Mar 29. 2022

취향의 발견

6. 샤이니처럼 입으면 샤이니가 되는 줄 알았지모야.

때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 교복을 벗고 캠퍼스에서 청춘을 뽐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치장하는 그때, 나 역시도 부모님이 사주는 옷이 아니라 직접 산 옷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갓 스무 살이 된 남자애가 뭘 알까. 옷의 세계는 너무나도 무궁무진한걸.(삼십 대인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그때 내 패션의 기준이 된 건 남자 아이돌 가수 '샤이니'였다. 남들에게 샤이니 같은 이미지로 비치길 바랐다. 지금 이 얘길 읽으며 미친 거 아니냐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패션이나 취향을 따라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90년대 김희선 머리띠가 유행했고 00년대 스킨스 에피병이 유행했다는 걸 다 압니다. 도망치지 말아요.)


샤이니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중 하나였다. 지금이야 아이돌들의 컨셉이 무척 다양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남자 아이돌이라면 어른스러움과 강인함만을 내세웠다. 그런 야생의 숲 사이로 요정의 호칭을 달고 등장한 샤이니는 소년미와 독특함으로 팬들을 끌어모았다.


특히 돋보인 건 난해한 장신구와 파스텔톤의 스키니진이었다. 격식 따위는 무시한 편안한 옷차림 위에 아이들 장난감이나, 보석들을 사용한 장신구가 그들의 신비스러움을 강조했다. 또 저렇게 가늘어도 괜찮을까 싶은 다리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스키니진은 신선함이 되어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그들의 차별성은 20대의 돋보이고 싶어 하는 자의식 과잉 남자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사춘기 내내 말랐다는 얘기와 남자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나에게 근육이 우락부락한 짐승돌은 무리였고 내 몸과 성격을 적극 이용할 수 있는 샤이니 컨셉에 나를 대입했다.


그래서 그들처럼 보일 수 있는 옷을 사기 위해 돌아다녔다. 물론 그들이 입은 옷이 아무리 평범해 보여도 자체 제작이거나 명품이라는 건 나도 안다. 내가 언제 샤이니가 되고 싶다 했나? 샤이니처럼 보이고 싶다고 했지. 그저 내가 생각한 샤이니하면 떠오르는 파스텔톤이 주는 밝음과 독특함, 난해함 등을 가져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루뭉술한 아이디어만 있었다.


하지만 패션에 관심이 있는 것과 패션 센스가 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떤 것이 예쁜지 안다고 하여 그걸 나에게 맞춰 입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내가 그런 이미지로 비치길 바랬을 뿐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과 샤이니 사이의 그 상당한 괴리감을 자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산 옷들이 샤이니스럽지도 않았다. 파스텔톤 스키니진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파스텔을 버렸고 장신구를 할 순 없으니 정신 사나운 프린팅이 들어간 티셔츠를 골랐다. 지금이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어쩌면 이때의 기억 때문에 더 싫어졌을지도 모를 옷들을 그때는 '샤이니가 된 나'만을 생각하며 골랐다. 그래서 대학시절 찍힌 사진들을 보면 참 가관이다. 옛날 사진이니 촌스러운 건 그럴 수 있겠지만 정말 나라는 사람과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어색하게 웃고 있다. 


밤새 이불을 걷어찰 만큼 부끄럽지만 나쁘게만 생각하고 싶진 않다. 20대니까 또 그런 과정 끝에 자기에게 좀 더 맞는 옷을 찾을 수 있는 거니까 길을 헤매고 돌아다닌 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착각 속에서 살고있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신 차려! 이 아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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