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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작가 Apr 03. 2022

취향의 발견

7. 심플 이즈 베스트, 벗 아이 원트 컬러

'나는 제법 옷을 잘 입는다', '나는 패셔너블하다', '나는 힙하다.'라는 착각에서 다행히도 난 빠져나왔다. 자칫 그 무시무시한 생각에 갇혔다면 걷잡을 수 없이 과감한 아이템들(굳이 시도해보고 싶은걸 찾자면 스카프, 로브?)을 골라 입으며 유행을 선도한다는 자만에 빠져 고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빠져나오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굳이 찾자면 나이가 들면서 생긴 아주 작은 현실감각? 내 외모, 내 성격, 내 경제력 등등을 파악하며 갖게 된 그 감각이 '샤이니 같은 소리 하네'라며 따끔하게 나를 걷어차 주었다. 혼구멍이 난 나는 옷장을 가득 채운 싸구려 프린팅 티 몇 장과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스키니진을 서둘러 헌 옷 수거함에 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건 무난함과 평범함으로 무장한 티와 바지였다. 과감한 시도(?)는 결국 촌스러운 기억을 남기고 헌 옷 수거함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그러니 안전하게 가야 한다.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 유행이랑은 아주 거리가 먼 옷, 브랜드조차도 드러나지 않은 무지(地)의 극치. 그런 옷들을 찾다 보니 프린팅은 고사하고 포인트로 달아놓은 작은 라벨조차도 거슬렸다. 그래서 아무런 장식이 없는 본연에 충실한 옷만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편리함에 대한 변화도 생겼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멋을 위해 입겠다는 신세대의 마음은 사라지고 겨드랑이며 바지통이며 어디 하나 끼이는 곳 없도록 크고 넓은 것을 선호하게 됐다. 물론 시대가 변하며 와이드 팬츠와 루즈핏, 박스핏 등의 유행이 온 것도 이유겠지만 솔직히 유행이라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단 나이가 들면서 사람 만나는 일이 줄고 만나더라도 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만 주변에 남아서 굳이 불편함을 감수할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편함과 효율을 추구한다고 하여 언제든 무난하게 착용할 수 있는 무채색의 옷들을 으뜸으로 치진 않는다. 검은색, 흰색, 회색이 세련되면서도 어느 조합이든 잘 어울린다는 것은 알지만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색의 옷들이 잘 어울리지도 않고 왠지 색이 없는 옷을 사는 건 손해 보는 느낌(?)이다. 비유가 이상하지만 복사할 때 흑백 잉크와 컬러 잉크의 차이 같은 느낌.


요즘의 내가 옷을 잘 입는다고 말할 순 없다. 옷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조합을 생각하고 사는 편은 아니라서 막상 내가 가진 아이템들을 조합하면 어딘가 부족하고 아쉽다. 하지만 확실히 스무 살의 나보다는 더 나다운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이 맞아떨어져 가는 게 즐겁다.


패션은 정말 재밌다. 바뀌어가는 유행도, 새로 생겨나는 디자인들도 모두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문화다. 20대의 나에겐 독특함과 난해함이 있었고 30대의 나에겐 편함과 무난함이 자리 잡았는데 과연 40대, 50대의 나는 어떤 패션을 선택하고 있을까?




※카카오뷰 브런치 독립서점에 가시면 상작가 인스타에서 에세이와 관련된 짧은 만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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