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작가 Apr 24. 2022

촌스러운 인간상

2. 모닝 페이지

아침에 일어나 곧장 책상으로 간다. 서랍 속의 손바닥만 한 노트를 꺼낸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오늘 날짜를 찾아 적은 후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휘갈긴다.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세 페이지를 채워야 한다. 그게 규칙이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적을 게 많을까 싶지만 그날의 분량을 채우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적다 보면 별의별 얘기가 다 적힌다. 어제 있었던 일, 오늘 할 일, 설레는 일, 짜증 나는 일 전부 적힌다. 밤새 생각하던 것이 여전히 떠오르기도 하고 그날 아침에서야 생각나는 일도 있다.


‘모닝 페이지’라는 것이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 알게 되었다. 모닝 쾌변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떠오른 생각을 상쾌하게 비우는 활동이다. 생각하고 기록하지만 이건 분명 버리는 행위다. 예쁜 글씨로 쓰려하지 않는다. 본래의 취지에 맞게 볼펜 똥이 지저분하게 노트에 묻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중에 이걸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지 않는다. 몇 개월이 지나 다시 보면 과거에 했던 생각들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참이다.


이걸 하게 된 이유는 쉼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요즘 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곧장 어디론가 떠날 용기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쉼은 뭘까? 게임을 하거나 누워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게 정말 나를 쉬게 하는 걸까. 그런 게 휴식이라면 나는 왜 자꾸 쉬면서 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러니 그 취미라 불리는 것들은 정답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자극을 주입하는 대신 비워내기로 했다. 깊게 고민할 필요 없는 단순한 쓰기 활동을 통해 나를 무겁게 했던 많은 생각들을 내 머리가 아닌 노트에 옮긴다. 마치 컴퓨터 파일을 외장하드에 옮기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효과가 있는가 묻는다면 아직 모르겠다. 여전히 쉬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다. 그런데 어떤 의미가 필요할까. 그냥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미로 같은 중간 과정 없이 머리에서 떠오른 것을 그대로 손으로 배출하는 단순한 과정. 애써 그 의미를 되짚어 물을 필요도 없는 그 과정 말이다.


현재는 그저 글을 통해 하루하루 똥만 만드는 인간이 되고 싶다. 부디 이 쾌변 활동이 나를 해독시켜주길 바란다.(끝)

작가의 이전글 촌스러운 인간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