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벼룩시장은 상가들이 문을 닫는 일요일에만 장사한다. 야외 노천에다가 돗자리 깔고 하는 장사여서, 눈비 내리면 또 안 열린다. 오후 느지막이 4시 넘어서 방문하면 이미 괜찮은 물건들은 다 팔고 장사를 접는 분위기다. 그래서 동묘벼룩시장은 날씨 아주 좋은 날 일요일 오전에 여유 있게 방문하는 게 좋다.
처음 동묘앞역에 내렸을 때는 어떤 동선으로 돌아야 할지도 잘 모르고, 우리가 구하는 LP나 빈티지 식기류들을 취급하는 곳이 어디 있는지 몰라 헤맸었더랬다. 이제 몇 번이고 다녀보니 길눈 밝은 남편이 나름대로 루트를 정하여 도보로 3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를 짜 두었다. 먼저 동묘앞역 동묘벼룩시장에서 출발하여 신당역 황학동 벼룩시장을 들러 신설동역 서울풍물시장까지 간다.
이제는 어느 사람이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다. 자릿세를 내지는 않을 텐데, 오랜 시간 동안 점유한 내 자리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같다. 터 잡은 판매자들은 잘 바뀌지 않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물건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아이쇼핑하고 득템하는 재미가 있다. 덤으로 저절로 1만 보 이상 걷게 되어 운동도 된다.
한 번은 앵커 호킹 등 미국 빈티지 식기류, 밀크 글라스 수십 점을 통째로 구매했었다. 트럭에 예쁜 밀크 글라스가 보이길래, 얼마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건 그렇게 하나씩은 안 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그릇을 원래 잘 취급하지 않는데, 아는 사람이 외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차곡차곡 모아뒀던 빈티지 그릇들을 팔아달라며 통으로 넘겼다는 것. 본인이 빠삭하게 잘 아는 품목도 아니고 하니, 통으로 한꺼번에 파시겠다고 했다.
견물생심이라고, 기존에는 거의 레트로 유리컵, 술잔 위주로 수집했었는데, MADE IN USA가 찍힌 뽀얀 색상의 밀크글라스들을 보니 사고 싶어졌다. 그때 당시 차를 끌고 간 것도 아니어서 들고 갈 수 있을까, 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릇의 개수를 따져보아도 정말 싸게 나온 거라 포기하기는 아까웠다. 결국 사기로 하고 근처 편의점 ATM기에서 돈을 인출해 바로 비용을 치렀다.
전부 유리 글라스여서 남편과 둘이 양쪽에서 들고 행여 깨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날랐다. 끙끙대며 지하철로 옮겼던 그때의 힘든 일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정말로 이런 득템 기회는 동묘에 몇 번을 가도 다시 오지 않았다. 역시 사길 잘했다. 살까 말까 고민되면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