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 산 지 2년이 넘었지만, 산책은 항상 아파트 공원길로만 다녔었다. 처음으로 다니지 않던 둑길을 걸었다. 걷다가 마주한 담장의 진한 보랏빛의 으아리 꽃, 하얀색 수국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수국나무는 풍성한 꽃다발 같기도 하고, 솜사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대문이 열려 있길래 남편은 조심스레 정원을 구경해도 되는지 물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신 지 흔쾌히 편하게 돌아보라고 허락해 주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다양한 식물들이 군생을 이루고 있었다. 흔히 잡초로 생각하는 클로버도 깨진 물조리개에 옹기종기 심어 놓으니 참 귀엽다.
우연히 만난 이곳은 시간이 선물해 준 정원이다. 말씀을 들어보니 무려 1997년부터 가꾸어오셨다고 하니 25년이 훌쩍 넘은 곳이다. 그러니 땅이 비옥해 묘목, 모종을 매년 새로 심지 않아도 겨우내 잠들어 있던 식물들이 봄이면 알고 새싹을 돋아낸다. 이 공간에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절로 여유로워지고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졌다.
주인분은 부모님 연배셨는데, 젊은 사람들이 식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신기했는지 감사하게도 커피와 식사까지 먹고 가라며 베풀어 주셨다.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인 어묵 잔치국수에 열무김치를 곁들였고, 남은 국물에 밥까지 말아 한 그릇 뚝딱했다. 오래전 누군가 버리고 간 – 혹은 잃어버렸을 수 있는 – 유기묘도 거둬 키우시고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마음이 저절로 전해졌다.
귀농, 귀촌 혹은 정원 있는 단독주택 집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 누구나 마음 한 켠 구석에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는 5년 전만 해도 무조건 도심 속 아파트에, 이왕이면 서울 중심부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내가 즐기는 다양한 취미, 공부 등 모임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둘째, 부동산 불패신화에 편승하여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이제는 조금씩 생각이 변하는 중이다. 수도권에서 가깝지만 자연과도 가까운 경계지역에 사는 방법도 있다. 투자는 부동산에 할 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 투자해서 수익을 얻는 방법도 있다. 또 아파트의 가장 큰 단점은 이웃과 소통이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에 다녀온 곡성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단체카톡방에서 얘기를 나누고 종종 식사를 함께 한다고 했다. 이 정원의 주인분은 꽃으로 이웃들과 소통한다. 많이들 지나다니다 예쁘다며 물어보면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고, 혹시나 이름을 까먹고 얘기 못해줄까 봐 식물마다 이름표를 꽂아 두었다.
조만간 좋아하시는 약주와 안주 들고 놀러 오겠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마음, 오랜 시간을 들여 가꾸는 일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