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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Aug 21. 2023

급할 것 없는 주말, 런던 여행 방법

즉흥 여행 : Walthamstow, Blackhorse, Dalston

급할 것 없는 주말을 보냈다. 토요일엔 브릭스턴(Brixton) 지역에 가자, 일요일엔 월섬스토(Walthamstow) 지역에 가보자는 것도 금요일에야 결정했다.

아침에 눈이 떠지는 대로 씻고 아침을 차려먹고 외출을 했다. 몇 시까지 어디에 꼭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으니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10분이면 도착할 역을 15분 정도 천천히 걸어서 지하철(Tube)에 탑승했다. 출근할 땐 꼭 7시 53분에 알람이 올리면 서둘러 집 문을 열고 나가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면 꼭 스마트워치나 우산 등 꼭 챙겨야 하는 걸 까먹곤 했다. 이제는 평일인지 주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왜 프리랜서로 일하는 분들이 시간 관리가 어렵고 중요하다고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출근이라는 루틴 하나가 빠지니 원한다면 한없이 매일을 한량처럼 보낼 수 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초조함을 느끼는 건 별개지만.


우리의 즉흥적인 여행방식은 대략 이렇다. 8월 20일 일요일의 원래 계획은 'Walthamstow Wetlands'라는 습지에 먼저 가서 산책을 하고 Blackhorse라는 지역의 마이크로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역에서 내리고 나니 축구 유니폼을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다. '아, 오늘이 여자 풋볼 결승전(영국 vs스페인)이구나'하고 마침 1시간 뒤면 경기 시작시간인 걸 알았다. 그래서 'Wild Care Brewery Lockwood'에 가서 경기를 먼저 보자고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줄 서는 곳이 보였다. 일단 나도 줄을 서고 검색을 해보니 'Big Penny Social'이라는 펍인데 내부가 창고처럼 엄청 넓고 대형 빔스크린이 여러 대가 있는 곳이어서 경기 관람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해보니 오늘 결승전 입장권 1천 장을 선예매받았어서 티켓 없으면 안 들여보내주는 거 아닌가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다행히 통과!

Big Penny Social

열렬한 응원을 하는 영국 사람들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비록 스페인에게 패하긴 했지만, 패한 순간에도 잘 싸웠다며 손뼉 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경기를 마치고 오다가 눈여겨 둔 독일식 사우어브래드 매장에서 빵을 사 먹었다.

Wild Care Brewery Lockwood

'Wild Care Brewery Lockwood'에도 가서 하프파인트 맥주 한잔씩 더 먹고. 그냥 멍 때리면서 쨍한 햇빛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Walthamstow Wetlands

마지막으로 계획했던 wetlands에 가서는 오리가족도 구경하고 실컷 걷다가 발이 아프기 시작하자 그냥 잔디밭에 누워서 낮잠을 잤다. 돗자리를 안 챙겨 와서 그냥 맨땅에 털푸덕 누웠다. (이렇게 안 챙겨 다닐 거면 한국에서 무겁게 왜 챙겨 왔나) 지나가는 행인들 말소리를 듣다가 까무룩 잠들어 깨니 어느새 오후 5시다. 점심을 빵만 먹어서 배고프니 그제야 저녁 먹을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오픈형 키친이 매력적이다

버스로 30분 거리 Dalston 지역에 기존에 가고 싶다고 표시해 두었던 'Little Duck The Picklery'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제철 식재료와 발효 식품이라는 굉장히 관심 가는 주제를 다루는 파인다이닝이었다.

부드러운 홍합과 파프리카 절임의 조화

기대했던 만큼 요리의 킥을 새콤한 발효 식재료로 잘 살려서 만족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요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요리, 전하고 싶은 가치는 어떤 걸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귀한 5일의 여름 휴가를 쓰고 주말을 껴서 최대 9일밖에 영국을 즐길 수 없는 단기 여행자였다면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분명 습지까지 와볼 여유가 없었을 거고, 미리 계획해온 일정이 있어서 낮잠 잘 시간도 없었을 것 같다. 어느 도시든 살아봐야 구석구석, 느슨하게 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는 이렇게 하루를 글과 영상으로 남기며 마무리하고 있다. 글은 내 담당, 영상은 남편 담당인데 둘 다 밀려도 한참 밀렸다. 글은 생생하게 기억날 때 쓰는 게 아무래도 좋으니 밀린 것들은 일단 제쳐두고 오늘의 일기부터 성실히 적어나가기로 했다. 영상은 초반에 편집 작업이 익숙지 않아 오래 걸렸다. 아직 5주 전쯤에 머물러 있는데,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겠지..? 지금도 열심히 편집 중이다. 분명 급한 거 없이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는데, 기록할 것들이 산더미인걸 자각하고 보니 내심 또 조급해진다. 마음 급한 천성 어디 안 가나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니까, 오늘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미루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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