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디치의 칵테일 전문샵 'TT Liquor'에서 서머 칵테일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했다. 강사는 전업 바텐더로 활기 넘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첫 번째 칵테일은 단맛과 짠맛, 신맛, 쓴맛과 매운맛을 배합해서 내 입맛에 맞는 맛을 찾아 무알콜로 만들었다. 두 번째 칵테일 Garibaldi는 캄파리 베이스로 만들었는데 캄파리 특유의 강한 쓴맛이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베스트는 마지막 세 번째 칵테일 watermelon mojito!
신기한 점은 강사분이 우연히 한국의 '청'에 대해 알게 되어 수박청을 직접 담아 오셨다는 거다. 청은 가열을 하지 않아 발효가 되면서 맛이 변화한다. 이 점이 서양에서 많이 먹는 일반 시럽이나 잼, 마말레이드와 다르다. 한국에서 집집마다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건 매실청이라 다른 과일로 만들어보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강사분은 영국 대표 여름과일인 라즈베리로도 청을 만들어보았다며 맛보게 해 주었다. 진한 라즈베리의 향과 맛에 반했다. 한국 식문화를 처음 접한 외국분도 직접 만들어보는데, 이렇게 쉬운 걸 왜 해볼 생각을 안 했을까? 나도 영국 제철 식재료로 청을 만들어봐야겠다. 내친 김에 김치도 만들어봐야지.
강의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같은 수업을 들은 radhika와 steve 부부와 만났다. 스몰톡을 하다가 감사하게도 steve가 시간 있으면 펍에 같이 가자며 제안해 주어서 맥주 한 잔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벌써 장성한 딸과 아들이 있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부부가 함께 새로운 배움과 경험을 하기 위해 클래스에 참여한다는 게 멋져 보였다.
우리가 출산 계획 전에 하고 싶은 게 뭔지 꿈을 찾기 위해 영국에 왔다고 하니 너무 잘 생각했다며 본인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radhika는 8살쯤 부모님과 함께 영국으로 왔고 본래는 스리링카 사람이다. steve를 만나 결혼하고 첫 딸이 2살이 되었을 무렵,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딸을 데리고 스리랑카로 향했다. 무려 18개월 동안! 보통 한국에서는 아이 낳으면 애보느라 자유가 없으니 그전에 하고 싶은 걸 다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내 인생은 이제 없는 건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기 쉬운데, 이 부부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모험을 한 거다. 오히려 초등학생이 되면 학교 가야 하니 길게 시간을 내기 힘든데 아기여서 'portable'하단다. 휴대하기 쉽다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충격을 받았다. "혹시 아기가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하죠?" 물었다. 그런 일에 대비해 보험을 충분히 들어두었고, 스리랑카의 소아 전문 병원에 대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갔다고 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자식 때문에 희생을 하게 되면 보상심리로 기대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부모 자식 간 관계가 깨지게 된다는 것, 그걸 가장 조심하고 지양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달에 집에도 초대해 주신다 하여 스리랑카 음식과 한국 음식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 런던에서 어학원이 아닌 곳에서 친구를 사귀어보긴 처음이다. 런던의 사람들은 너무 차갑다는 편견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인연이 참 신기하기도 하지. 역시 사람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것 같다. 영국에서 음식과 술, 요리에 관한 클래스나 페스티벌을 앞으로도 열심히 찾아다녀보아야지. 새로운 미식 경험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만날 소중한 인연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