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클래스 수강생으로 알게 된 인연, 래디카네 집에 초대받아서 다녀왔다. 저녁 7시, 아이 둘을 다 독립시키고 은퇴할 법도 한데, 래디카는 저녁 시간임에도 화상 회의 중이어서, 남편 스티브가 맞아주었다. 래디카 업무가 끝날 때까지 스티브가 선물로 받은 스페인의 내추럴사이더를 나눠마셨다. 우리가 사이다(cider; 사과로 만든 발효주)에 관심이 많은 걸 기억하고 나눠주다니 감동이다.
영국은 일정 연령이 되면 무조건 퇴직해야 하는 정년이란 게 없는 나라다. 2011년에 10월 1일에 정년이 법으로 금지되었고, 이력서를 낼 때 나이, 생년월일을 적거나 물어보는 것도 불법이기 때문에 몸이 허락하는 한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거다. 한때는 나도 파이어족을 꿈꿨었는데 이제는 좀 생각이 다르다. 나이가 들어도 열정을 가지고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돈이 없어서 은퇴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면 그만큼 고달픈 것도 없다.
칵테일 클래스에서 만난 인연이니, 칵테일을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침 래디카가 생일 선물로 홈텐딩 키트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진 베이스의 화이트레이디 1잔과 럼 베이스의 모히또 3잔을 만들어 가볍게 즐겼다. 최근에 부부가 아일랜드에 다녀온 이야기, 배우인 아들이 새로 시작한 연극 이야기, 심지어는 영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까지 일상다반사를 나누었다. 영국 국민들이 이제는 과반수가 브렉시트는 잘못된 결정이라며 여론이 바뀌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저녁식사는 살짝 매콤한 향신료를 곁들여 구운 연어, 채소스튜를 밥에 곁들여 먹었다. 영국에서 가정식을 대접받아먹어본 건 처음이다. 어딜 가나 집밥은 집밥만의 온기가 있다. 레스토랑 같은 화려한 플레이팅은 아니지만, 오래 졸여 깊은 맛을 내는 채소스튜와 적당히 오븐에서 익어 부드러운 연어를 번갈아 먹으며 숟가락을 놓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비스킷에 더블크림, 라즈베리와 블루베리를 올려 굉장히 간단하게 따라 만들 수 있는 디저트도 내어주었다. 고소하고 크런치한 비스킷, 부드러운 더블크림, 새콤달콤한 베리류 삼합이 참 잘 어울렸다. 감사하게도너무 대접을 받아서, 다음 기회에는 우리가 한국음식을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덧 ) 이 날의 대화에서 알게 된 'Home Exchange'라는 플랫폼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집에 없을 때 우리 집을 여행객에게 빌려주고 쌓은 포인트로, 여행을 다닐 때 현지인의 집에 묵을 수 있도록 집을 교환해 주는 서비스다. 실제로 래디카네 부부는 home exchange를 활용해 해외여행할 때 현지인의 가정집에 머물며 좋은 경험을 하고 숙소비도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모르는 여행객을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에 들인다는 게 꺼림칙할 수 있지만, 여기도 에어비앤비처럼 상호 평가제도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깨끗하게 사용하고 간다고 한다. 평점이 안 좋은 사람은 거르면 되니까 걱정할 건 없다. 우리나라를 찾아보니 전국에 20 가구밖에 등록되어 있지 않더라. 기회가 된다면 꼭 활용해보고 싶은 여행 숙박 플랫폼이다.
부부는 이 동네에서 33년간 살았다. 같은 길에 사는 동네 주민들끼리 커뮤니티가 굉장히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다면서 참 행운이라고 했다. 100 가구가 넘게 참여하는 whats app 단체톡방이 있는데, 거기서 자주 나눔글과 나눔 요청글이 올라오고 만남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가령 한 번은 래디카가 크리스마스 롤케이크를 굽는데 들어가는 재료 중 깔루아 - 커피술이 없었다. 케이크 굽겠다고 깔루아 한 병을 살 순 없으니 이웃톡에 조금만 나눔을 요청해서 맛있는 케이크를 구울 수 있었다고! 이렇게 활발한 커뮤니티가 있다면 공구와 연장, 잔디 깎기 등을 집집마다 보유할 이유도 없다. 함께 나눠 쓰면 되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이웃이 있으니까.
활발한 이웃 나눔 덕분에 우리도 덕을 봤다. 이웃 중 한 명이 홈브루잉을 하다가 포기했는지 발효통을 나눔 했는데, 마침 래디카가 우리 생각이 나서 받아다 준거다. 위의 사진은 나눔 받은 맥주 숙성 발효통을 들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통 내부를 살피고 있는 모습이다. 무료 나눔은 참 좋은데, 자꾸만 늘어나는 짐을 우짤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