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백칠호 Feb 16. 2021

SNS 내로남불

육아스타그램과 아기스타그램 환영

세상에 처음 나온 날, 찢어져라 울어대던 벌건 핏덩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그 핏덩이는 제 발로 땅을 딛고 총총거린다. 여전히 울음소리는 우렁차다.


거짓말처럼 아이는 순식간에 자란다. 몸무게는 태어났을 때의 3배를 넘어섰다. 어둠이 내렸다 사라지면 마법처럼 얼굴도 달라져 있다. 어제는 웃을 때 반달이 되는 눈이 꼭 나였다가, 또 오늘은 치켜 올라간 눈썹산과 삐죽거리는 하트 모양 입술이 영락없는 아빠 아들이다. 어쩌면 이렇게 매일 다른 얼굴일까. 지난달에는 몰랐던 개념도 이달에는 아는 것을 넘어 말로 표현하기까지 한다. 딸기를 먹으며 ‘딸기’라는 발음을 알려줬더니 어느 날 갑자기 딸기를 가리키며 “딸.기.”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식이다.


부지불식간에 달라지는 아이의 얼굴과 몸, 행동과 말. 전개가 빠른 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일이 내 삶에도 일어나고 있다.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명장면을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존재인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셔터를 누른다.


지금 휴대폰 사진첩에는 정확히 12,684개의 사진이 있다. 오랜만에 SNS 프로필 사진을 바꾸기 위해 내 독사진을 찾으려 스크롤을 한참 올려도 안 보였다. 미루어 짐작컨대 만 장이 넘는 사진 중 팔 할이 아이 사진일 거다. 아이 사진 만 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셈이다. 따로 사진첩을 정리하진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애교 #첫걸음마 #바다여행 #모자셀카 이런 해쉬태그로 분류되어 있다. 누군가 “아들내미 사진 좀 보자. 엄마한테 이쁜 짓 많이 해?”라고만 말해도 10초 안에 주머니에서 사진을 샤샤삭 꺼내서 시기별로 구분해 보여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같은 사진, 같은 영상을 이미 수십 번도 더 돌려보았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3시간 동안 자세 한 번 바꾸지 않고 아이 사진을 감상한 적이 있다. 유튜브에 취향 알고리즘이 있다면 엄마들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자체 ‘아이 사진 알고리즘’이 있는 것 같다. 왜 이 사진을 보면 또 다른 사진이 눈에 들어오는 건지, 왜 봤는데 또 보고 싶은 건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예쁜 걸 나만 보기엔 아깝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맙소사!) 평소 없던 실천력이 왜 이럴 때만 생기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냅다 인스타그램에 아이 사진을 업로드해버렸다. 사진 아래 댓글이 차례로 달렸다. “어머, 너무 귀엽다~” “아가가 아주 똘똘하네요” 칭찬이 이어진다. 내 눈에만 예쁜 줄 알았는데 역시 보는 눈은 다 비슷한가? 라는 착각에 빠졌다가 이 맛에 인스타그램한다 싶을 때쯤 오래전 유행했던 SNS가 떠올랐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안 하는 사람이 없다지만 8~9년 전만 해도 카카오스토리가 대세였다. 자주 만날 수 없는 고향 친구들과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다. 주로 일과 관련된 이미지와 단상, 예쁜 카페, 좋았던 여행지의 풍경 사진을 공유했다. 일촌들의 피드에는 커플사진, 결혼사진이 주였다가 서서히 아기 사진도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구를 꼭 빼닮아 미니어처 같은 2세가 너무 신기하고 예뻤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며 피드가 온통 아기 사진으로 도배되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나는 이 아기가 영이 큰 딸이었나, 경이 둘째 딸이었나 구분도 못 할 정도가 되었다. 아기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일촌들이 서로의 아기가 예쁘다며 품앗이처럼 돌아가며 댓글을 다는 걸 보고 웃긴다고 생각했던 날,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더 이상 카카오스토리에 로그인하지 않았다. 일과 여행에 빠져있을 때였다.


그즈음 나이 마흔에 득남한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미팅이 끝나면 항상 갓난쟁이 아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서도 한결같았다. 아침부터 업무 관련 메시지를 보내도 마무리는 아들 사진이었다. “너~어무 귀엽지 않냐”는 말도 꼭 붙였다. 솔직히 아무리 봐도 귀는 있었다. (대놓고 말은 못 했다.) 나와는 참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참 일에 미쳐 있을 때였다.


그 클라이언트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나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아이를 낳았다. 10년 넘게 타지에서 가열차게 일만 해오던 내게 가족이 생겼다. 남편과 아들은 나무 같았다. 낯선 곳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품어주는 무성한 가지와 잎이 있었고, 낯선 곳에서 더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깊은 뿌리가 있었다. 내가 만든 나무를 가꾸는 일상의 매 순간이 소중하다. 별 것 없고 밋밋하고 피로한 일상일지라도.  


아침마다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밤 새 별일 없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와 호들갑스럽게 아침 인사를 나누고 슬쩍 기저귀를 열어본다. 아이의 위장은 안녕하신가 보다. 시작이 좋다. 창문을 열고 오늘 날씨는 어떠려나, 혼자만 들릴 정도의 데시벨로 궁시렁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 식사는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히 만들어 먹는다. 아이가 오늘은 잘 먹던 김마저 안 먹으니 어디가 아픈가, 송곳니가 나는 중이라 그런가. 식사 중에도 아이를 향한 빅데이터 시스템은 풀가동이다.

출근하는 남편과 등원하는 아이를 배웅한 뒤, 환기를 시키고 널브러진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를 돌린다. 식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집 근처 작업실로 출근한다. 5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업무를 끝내고 어린이집 알림장을 체크한다. 하원길에 빵집에 들려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사흘 치산다.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놀며 명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이가 잠든 밤이 되면 장난감으로 발 디딜 틈 없어진 거실을 정리해나간다. 다 마른빨래도 갠다. 아이 발달에 맞는 장난감과 책 검색의 늪에 빠졌다가 정신줄을 부여잡고 어린이집 가방을 싼다. 심지어 요즘에는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서 할 말이라면 밤을 새우고도 모자란다.


남들이 봤을 때 그런 일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엄마의 잡무로 하루를 채운다. 가끔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어쩌면 내가 아이와 함께 매일 쳇바퀴를 돌리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닐까. 인스타그램 속 비즈니스, 인사이트, 트렌드, 글로벌 이슈 같은 것들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 아이만 귀여우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걸까. 사실 그런 거창한 것들에도 부지런히 곁눈질하며 세상사와 내 직업에 무책임하지 않은 태도로 살고 싶다. 다만 나의 잎이자 뿌리인 아이와의 일상도 성실히 가꾸며 소중히 기록하고 싶다.


어쨌든 일상과 취향을 공유하는 곳이 SNS 아니던가. 일상이 온통 아이이고 보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이이며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아이인데 어떻게 아이 사진을 공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카카오스토리에 아기 사진을 올렸던 지인들에게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랜만에 생각이 난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다시 찾았다. 온통 캠핑 사진과 음식 사진이네. 뭔가 또 한발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캠핑과 음식 사진에 혼자 마음의 벽 세우고 인스타그램에 다시 발길 끊는 일이 없길 바라며, 각자의 나무를 가꾸는 일을 쉬이 여기지 않겠다 다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싱크대 수챗구멍을 비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