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알못이 되지요
작년 가을,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다 말고 충격에 휩싸였었다. <코스모폴리탄> 잡지를 보던 참이었다. 특집 테마가 무려 ‘돈과 부동산’이었다. 2030 언니들의 섹시한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잡지에서 이것들이 주인공이라니. <월간 머니>에서나 다룰 법한 내용이 아니던가? 언제부터 돈이 우리 삶에서 이렇게 중요해졌나? 어쩌면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척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슬아 작가의 수필집 『심신 단련』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지난 몇 년간 가장 많이 반복해서 쓴 메일은 그래서 얼마를 주실 거냐고 묻는 답장이었다. 숱한 원고 청탁이나 강연 제인 메일이 오는데, 열어 보면 돈 얘기는 쏙 빠진 경우가 허다하다. 잡지의 취지와 운영진의 큰 뜻과 강연의 중요성 등 온갖 구구절절한 얘기는 다 써놨으면서 돈 얘기만 생략되어 있다.(… 중략…)하지만 대가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일을 맡을지 말지 어떻게 결정할 수가 있나.”
시간과 몸과 마음을 써야 하는 일엔 그만치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지만 오래전부터 문화 예술을 비롯한 출판 업계에선 ‘돈’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않아 왔다. 돈 이야기를 꺼내면 뭐 창작물의 작품성이 더럽혀지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튼 오랜 시간 요지부동이었던 웃기는 이 업계에서 돈과 일에 관해 똑 부러진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이슬아 작가에게 놀라움을 넘어 존경심마저 생겼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훨씬 멋진 에티튜드를 가졌으므로 언니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슬아 언니 나이였을 적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던가.
열정 페이에 영혼을 갈아 넣던 때. 시발비용이랍시고 예쁜 쓰레기를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신나게 카드를 긁고, 인사이트를 얻어야 한다며 먼 나라 이웃나라 여행을 다니는 사이에 내 또래들은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가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다들 돈을 착착 모으고 집도 척척 불려 나갔는지. 가끔 후회된다. 돈을 외면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날들이.
내가 돈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두며 살았던 이유는 시대적 환경도 한몫했다. 학사경고를 받아도 대학 졸업만 하면 건실한 중견기업에 논스톱으로 취직이 가능했었던 시절을 지나왔다. “너는 그냥 학교나 열심히 다녀.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부모님과 돈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은근히 터부시 되었다. 최영 장군님은 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하셔 가지고 나 같은 돈알못을 만드신 건지.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왜 “배우면서 돈을 번다”는 말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집과 자산의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서울 한복판에 내 몸 뉘일 곳이 생겼다는 생각에 2008년 창천동 2평짜리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옮기던 날도 충분히 기뻤다. 그러다 이제 볕이 잘 드는 곳이면 소원이 없겠다는 싶을 때 즈음, 다세대 주택 2층 투룸으로 이사했다. 기억난다. 옥색 싱크대 문짝에 나뭇결 시트를 바르고 손잡이 바꿔 끼워가며 신바람 나게 셀프리폼하던 날들. 마지막 자취집은 연남동 빌라였나. 낮이건 밤이건 내킬 때마다 공원길을 산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자리 잡았었다.
3년 전, 지금 신혼집을 고를 때도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숲이나 공원 산책을 즐길 수 있고 각자의 회사에서 적당히 가까울 것.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시야의 개방감을 어느 정도 확보할 것. 그런 기준으로 몇 곳을 둘러봤다. 최종 선택지는 두 개였다. 은평구의 아주 오래된 아파트를 매매하느냐, 한강공원이 가까운 영등포의 신축 빌라 전세로 들어가느냐. 살아보며 매매해도 늦지 않다며 결정한 것이 후자,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다. 일단 공원이 가깝고 개성 있는 상점들이 드문드문 있는 아기자기한 동네 분위기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방은 2개지만 거실이 넓게 빠진 것도, 신축이라 손볼 곳 하나 없다는 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딱 우리 같은 신혼부부를 위한 맞춤집이었다.
(지금 먹고사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실내건축 전공 부심으로 처음 신혼집을 꾸리면서 공을 많이 들였다. 발품 손가락품을 팔아가며 백 퍼센트 마음에 드는 물건만 출입을 허했다. 인테리어는 가능한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원목 가구 위주로, 색감은 북유럽 스타일로. 거실 한가운데 책장과 테이블을 두고 창밖을 내다보며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책도 읽으며 신혼다운 달달한 나날을 보냈다.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한강공원 마실의 즐거움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요즘 부동산 추세를 보면 2017년의 나에게 화가 난다. 화가 나다 못해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곧 터질 지경이다. 신혼생활 중 투자했던 수도권 아파트는 아직도 난항을 겪고 있고, 그때 그 은평구 아파트는 GTX 호재로 2배를 넘어 3배가를 향해 가고 있다. 우리 집 거실 풍경이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인다. 누가 봐도 전쟁통에 급히 짐 챙겨 피난 떠난 흔적이다. 거실이 발 디딜 틈 없이 장난감과 육아용품으로 꽉 들어찼다. 심지어 한가운데 들여놓았던 테이블은 당근 처리한 지 오래다. 조금만 더 넓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내 몸 뉠 자리 있고 볕 잘 드는 집이면 충분해”라고 했던 발언을 철회한다.
지금보다 더 넓은 집을 원한다. 거기에 병원 마트 초등학교를 끼고 있으면 좋겠다. 아… 쓰다 보니 초품아, 마트권, 병원권이라는 말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겠다. 하여튼 지금은 더 넓고 위치가 좋은, 이왕이면 자산에 도움이 될 집이었으면 한다.
두세 배로 껑충 뛰어올라 그들만의 리그가 된 아파트 세상. 생각하면 속만 쓰리니 당분간은 덮어두고 현실적인 자산 불리기와 앞으로 기회를 어떻게 잡을지에나 집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이 어딘가엔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그런 집에서 사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아주 먼 미래의 일처럼 요원하게만 느껴지지만.
어깨가 처지다 못해 내려앉기 전에 오정희 작가의 『새』 속 제일 좋아하는 구절을 다시 찾았다.
과거의 내가 후회될 때마다 꺼내 곱씹는 구절이다.
“이 세상에 한 번 생겨난 것은 없어지는 법이 아니라고, 먼 옛날의 별빛을 이제사 우리가 보는 것처럼 모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연숙아줌마는 말했었다.”
한 번 생겨난 것은 없어지지 않고 그 자취는 훗날에라도 나타난다니. 좀 무섭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그것만큼 희망찬 말도 없다 싶다. 돈알못 시절을 보낸 내가, 돈 없이도 희희낙락 살아가는 오늘의 나를 만든 거겠지. 돈에 얽매이지 않고 호기롭게 좋아하는 일을 택해서 다행이다. 그 일을 통해 여태껏 먹고살고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랄까. 자식에게 물려줄 돈도 집도 없지만, 돈 없이도 행복한 순간을 자주 맞이하며 살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게 제일 다행이고.
애매모호한 거 싫고 선명하고 또렷하게 결정하고 내딛는 걸 즐기지만 돈에 관해서만큼은 아직도 마음이 왔다갔다한다. 나이들수록 더 그래. 하, 그래도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그 아파트는 꼭 사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영진
남편과 종종 최영 장군 님 뒷담화를 합니다
우리 세 식구에게 꼭 맞는 (넓고) 예쁜 집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