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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칠호 Jun 28. 2021

애플워치를 팔찌처럼 쓰는 사람의 변

디지털 알레르기

남편에게 애플워치를 선물 받았다. 내가 가진 전자제품의 팔 할은 남편 지분이다.

디지털 알레르기러는 전자기기 덕후 남친과 결혼한 이후로 자주 신문물을 경험하고 있다. 사실 애플워치가 궁금하긴 했다. ‘궁금하다’고 했지, ‘갖고 싶다’거나 ‘사용하고 싶다’고 하진 않았다. 예뻐서 호기심이 생겼지만 막상 받아보니 기본화면이 못생겨서 손목에 두르기는 망설여졌다. 화면을 바꾸려고 찾아보니 또 뭘 설치하란다. 귀찮아서 그대로 곱게 놔뒀다. 그러다 무심코 착장에 어울리는 것 같아 애플워치를 손목 위에 모셨던 어느 날, 음성으로 메시지 답을 하는데 웬걸? 내 기대보다 훨씬 편리했다. 아이 앞에서 핸드폰을 꺼낼 일이 없어서 마음도 편했다. 제대로 세팅하면 더 편한 일이 많을 것이란 걸 머리는 알지만 아직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애플워치는 드물게 내 손목 위에 둘러지고, 자주 아이폰을 찾는 용도로만 쓰여진다.


취향에 맞춰 워치페이스를 설정하고 어떤 앱을 어떤 활동에 쓸 건지 설계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두드러기가 난다.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를 이렇게 돌려서 해본다. 하여간 스마트 워치는 보면 볼수록 (내가 설정하기 전까지는) 하나도 스마트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디지털 알레르기러는 기약 없는 업데이트를 종료시키고 엄마에게 물려받은 예쁜 가죽시계에 손목을 더 자주 내어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초에는 아이패드, 재작년에는 전자책 리더기를 선물 받았다. 초반에 빠짝 나의 애정을 받은 전자책 리더기는 결국 책장 한켠에 장기투숙 중이다. 전자책 리더기를 처음 만났을 땐 신세계였다. 180g의 가벼운 무게 덕분에 휴대하기 좋았고, 글자 크기나 행간 자간 조도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미어터지는 책장과 양가에 보낸 책 상자를 떠올리면 전자책이 답이었다.


그 답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시나브로 슬금슬금 종이책을 다시 구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잡지는 종이책으로 사는 것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질감을 만끽하며 천천히 넘겼다 촤르르르 빨리 넘겼다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하는 재미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코끝에 스치는 종이 냄새도. 전자책 리더기 자체 액정이라는 일정한 판형, 까만 텍스트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이즈, 레이아웃, 종이 질감 등 물성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 분명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소장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꽤 컸다. 전자책은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느낌. 드라이브 깊숙한 데에 묻혀있는, 굳이 찾지 않으면 볼 일 없는, 한순간의 실수로 날려버릴지도 모르는 파일 같아서 영 찜찜했다.

누군가는 종이잡지가 사라질 거라고도 하지만, 종이잡지라는 매력적인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디지털에선 구현할 수 없는 참신한 기획과 콘텐츠를 종이잡지에 담아내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디지털 알레르기러는, 이렇게 또 디지털 알레르기에 대한 변을 종이책에 대한 애정을 예로 합리화해본다.




얼마 전 택시를 탔다가 ‘타다’나 ‘쏘카’ 서비스에 폭발적으로 분노하는 기사님을 만났다. 생업에 피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실 수 있다. 그런데 한참 말씀을 듣다 보니 저런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선, 자율주행차에 대한 견해는 어떠실지 궁금해졌다.


“기사님, 그럼 자율주행택시 나오면 어떡해요?”
“에이! 그런 게 나오겠어? 그리고 나와봤자라고. 자동차 혼자 어딜 다녀. 차가 꽉 찬 도로에서 사고 나면 어떡해? 택시기사가 꼭 타고 있어야지.”


자율주행자동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시는 택시기사님의 발언에 기분이 묘했다.

혹시 디지털콘텐츠크리에이터 내지는 90년대생을 비롯한 4차혁명시대를 주도할 전문가들이 보는 나도 저런 모습일까. 100세 시대, 나는 아직 60년도 넘게 남았는데 그동안 매번 새롭게 다가올 디지털 신문물의 파도에 신나게 올라타 즐길 수 있을까. 작은 파도 앞에도 머리를 감싸쥐며 도망가기 바쁜데. 2010년대생 아이와 함께 남은 21세기를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스스로도 걱정된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남편은 내게 신박한 전자기기를 건네준다. 이번엔 애플워치였다. 디지털 알레르기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던 나에게 매번 디지털 세상 초대장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직접 사용해 보면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음엔 어떤 기능을 써볼까? 하는 단계에서 좌절하긴 하지만.


이번 생에 디지털 알레르기를 극복할 순 있을까? 그래도 인스타그램 같은 SNS도 제법 잘 사용하고 있고, 브런치도 일단 승인은 받아 이렇게 글을 올리곤 있는데. 그 다음 스텝이 어렵다. 글을 다 쓸 때까지도 디지털이 없는 세상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디지털 알레르기가 아직 몸에 남아 있다. 

택시기사님과 나는 애플워치와 전자책과 자율주행자동차가 없어도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럭저럭 잘 사는 것 말고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싶다면 나는 애플워치와 전자책리더기를, 기사님은 자율주행자동차를 어떤 식으로든 활용해야 봐야 하지 않을까. 올해가 다가기 전에 애플워치를 좀 더 활용해보고 디지털 면역력을 길러보려 한다. 그리하여 디지털 알레르기를 끝내! 극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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