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사했습니다

쓰는 인간이 되기 위한 첫 걸음

by rutaro

나는 오늘 퇴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었다.

사장까지 여섯 명뿐인 작은 회사ㅡ회사라기보다 그냥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ㅡ였지만 복지도 나쁘지 않고 급여도 낙낙했으며 사람들도 좋았다. 일이 좀 많고, 야근이 잦고, 종종 주말 출근까지 해야 했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괜찮은 회사였다.


그런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은 순간의 감정 때문이었다. 아니, 분명히 순간의 감정이었는데 퇴사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내뱉고 나니 퇴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었다. 나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사장을 위해서도(?) 내가 이 곳에 남아있으면 안 되겠다는, 마치 계시와 같은 확신이 뒷통수를 쳤다.

그래서 1년 업무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면담 자리에서 퇴사를 선언함으로써 사장의 뒷통수를 쳤다.

(아마 사장은 내가 그만 둘 것이라고는 전혀, 꿈에도, 솜털만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사장인양 열과 성을 다하며 시키지도 않은 주말 출근에 새벽 야근까지 해가며 그야말로 충성을 다했으니까.)


퇴사를 선언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2주 동안 나는 나 자신을 톺아보았다. 상당히 불편해져버린 사무실의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며, 은근한 무시와 따돌림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꿋꿋하게 웃어넘기며, 짐짓 태연하게 손을 놀려 일을 쳐내며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뭘 하고 싶어?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네가 바라는 삶은 대체 어떤 모양새야?


거창한 답 대신 소소한 몇 가지가 떠올랐다.


바빠서 그만 둔 요가를 다시 하고 싶어.

에릭 사티의 짐 노페디를 완벽하게 치고 싶어.

글을 쓰고 싶어.


그 중에 제일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쓰는 인간'이 되겠다는 혼자만의 선언을 하고, 수년 전에 만들어 글 한번 게시하지 않고 방치한 브런치 계정에 글을 쓰고, 혼자 끄적여온 초단편소설을 몇 편 올린 뒤, 작가 신청을 했다. 아니, 제발 작가 시켜달라며 읍소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작가가 되었다.(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고마워요! 열심히 쓸게요!)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의 나는 백수다.

단, 글을 쓰는 백수다.

하얗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그러쥐지 않아도 되는 힘 풀린 손으로 타각타각 자판을 두드리며, 꽤 오랜 세월동안 내게 없다고 생각했으나 직장생활을 하며 발견한 의외의 꾸준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마치 업무를 보듯 성실하게 글을 쓰는 백수가 될 것이다.


쓰는 인간, Homo Scribens.

쓰다보면 될 것이다. 정말로, 뭐든,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