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만남에서 우리가 되기까지
자작나무 숲을 상상하면 낭만적이고 운치 있다는 느낌을 갖지만, 막상 자작나무를 바라보며 오르는 길은 중력의 무거움으로 어느새 낭만은 사라지고 거친 숨에 갑갑한 마음만 올라오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아침이 그러하다. 화사한 햇살이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깨워주는 아침이면 참 좋겠지만, 지천명이라는 50 고개를 넘고 보니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은 아침을 맞게 된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집안일을 하고 하루의 일과를 한창 하다 보면 어느새 몸은 가벼워지고 여러 만남 속에 몸과 마음의 무거움을 잊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소소한 만남에서, 그들의 어려움과 마음을 들어주고 나름 대처 방법을 찾아가다 보면 마치 내 삶의 대처 방법을 찾아가듯 그들과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
이 말만 여러 번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그저 정해진대로 흐르고,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나의 글은 늘 비슷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 뭔가를 꺼내 놓다가도 소중한 것은 다시 정리해서 소중히 담아두고 하는 시간들이 너무 좋은데 현실의 삶을 살다 보면 내가 그랬음을 잊곤 한다. 그래도 다시금 이렇게 적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왔음이 감사하다.
몇 년 전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 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 다양한 아픔과 어려움, 좌절과 낙담,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있었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야 하기에 상담을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대할 때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 또한 그 아픔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던 시간이 있었다.
저녁에 잠들 때면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늘 내가 뭔가 부족하고, 가치 없고, 누구도 나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느껴지지 않던 시간이 있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내면에는 늘 깊은 어두움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어진 시간들은 또 살아내어야 하기에 하루하루 살아보면 좋은 사람도 간혹 만나고, 좋은 만남에서 즐거움도 맛보고, 내게 주어진 일에서 성취를 맛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그나마 살아낼 힘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안 좋은 상황에선 거침없이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려는 손길이 늘 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와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 가더라. 도와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물론, 내가 그 깊은 어두움의 터널에서 조금 더 빠져나오게 되면서, 내 내면의 깊은 바닥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힘이 점점 약해지면서 나를 용납하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것과 맞닿아있는 것 같다.
어떤 아픔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회복되고 나아지는지 그 과정들을 나누고 싶은 것 같다. 상담사로서 내가 느끼는 아픔과 감격도, 내담자들이 느꼈던 감사와 감격을 오롯이 전달하며 어딘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머무는 누군가에게 글에 담긴 위로와 희망의 마음들이 닿았으면 싶은가 보다.
그것이 단 한두 명일지라도..
작은 희망의 햇살이었으면 하는..
그래서 다시 사람들 가운데로 나올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