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야기-미움받을 용기 편 3>
모든 것이 본인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아들러의 발상이 기발하다.
어릴 때 고통받고 상처받아서 생긴 열등감에 가득 찬 나의 모습마저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너무 가혹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들러는 잘나고 똑똑해서 이렇게 비하한 듯 말했을까? 그건 분명 아니라는 거다. 왜 아들러는 이렇게 가혹한 전제를 두었을까?
아들러는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도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라고 말한다. 열등감도 주로 비교에서 오니까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린 없애고 싶어 하는 이런 열등감을 아들러는 성장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열등하다는 느낌이 있어야 인간은 성장과 변화를 시도할 동기를 얻기 때문이다.
우린 흔히 열등감 때문에 위축되거나 포기하고 싶은 상태가 될 때가 많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무기력이나 회피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아들러는 그러한 상태를 열등감보다 열등 콤플렉스라는 말로 사용한다.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라고 정의된다.
‘나는 못 생겨서 사회적으로 불리해요’, ‘나는 못 생겨서 여자 친구가 없어요’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자신이 없으니까, 여자 친구를 사귈 자신이 없으니까 못 생긴 것을 핑계 삼는다는 말이다. 정말 나의 부족함에 정면으로 맞닥뜨리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가.. 용기가 없으면 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못 생겨서 못한다기보다 못할 것 같으니까 못 생긴 것을 핑계 삼는 상태라는 것. 변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차라리 그대로 머물자를 선택한다는 거다.
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내용을 읽으며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생각해 보았다. 정말 그런지.. 생각해 보면 내가 별로인가?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던 사건 앞에 '난 별로인 사람인가 봐'라는 생각의 결정을 하게 된 것 같다. 결심까지는 모르겠고 결정은 한 것 같다.
그런 나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반전을 위한 정보가 내게 더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피드백이나 나 스스로 찾은 나의 장점들과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에 대한 인정 등과 같은 정보들을 그렇게 무수히도 수집하고 살았나 싶다. 그 모습은 흔히 말하는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으로도 보일 것 같다.
나의 좋은 점에 대한, 반전을 일으킬만한 다른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앞으로 나갈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히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된다. 인간의 고민은 죄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먼저 지난 회기에 썼던 미움받을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해도 나의 모습대로 살아갈 용기,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거다. 그래야 상대방의 반응이나 인정에 기대기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릴 때는 아무런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중요한 타인의 인정이나 가르침은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래서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우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대응할 능력이 생긴다. 외부에서 나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그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 경험하는 자기와 외부에서 평가받거나 강요당하는 자기의 모습이 괴리가 클수록 고통스러워한다. 그것을 일치시키고 싶어 우린 그렇게도 내가 누구인지 찾는 것일 거다.
나를 열등 콤플렉스에 빠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마주 하고 싶지 않고 거부하고 회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그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변화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변화하기 두려워 무언가를 핑계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변화하지 않고 머무는 자신을 한심스러워하며 더 낙심하고 있진 않은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다.
변화할 용기,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다.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싫다고 말도 해보고,
변화하지 못하더라도 변화를 시도해 보고,
그래도 큰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못하더라도 책망하기보다 도전한 용기를 칭찬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나 자신과 비교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어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인정해 주는..
이제는 나에게 작은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보는 건 어떨까..
이 모든 과정에 깔려 있는 것이 인간관계다.
함께 해야 하지만 함께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바로 나답게 살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만큼 내가 나답게 세워지려면 건강한 경계, 즉 수용할 건 수용하고 거절할 건 거절할 수 있는 세포와 같은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이걸 아들러는 과제 분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상대방이 아무리 내게 소중한 존재라 할지라도, 내가 끌어안을 수 없는 과제를 내 것으로 끌어올 때 나는 고통스러워지고 상대방은 나에게 의존적이 되고 자신의 기대에 맞추지 않는 나를 비난하게 된다.
조금씩 나 자신에 대한 태도가 건강해지고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첫 단추이다.
이 단추가 끼워져야 다음 단추를 찾아서 끼울 수 있다.
내가 바로 섬으로 다음으로 이어질 타인과의 관계는 어떤 방향성으로 가야 할지 다음 회기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