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과 코칭이야기-MBTI>
"제가 이상한 걸까요?"
오늘 만난 내담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늘 조잘거리는 아이가 부담스럽고 힘들단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독 사람에게 달라붙고 말도 많고 사랑표현도 많이 요구하는 아이가 자신의 무심한 반응에 어느 순간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며 걱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내담자가 어릴 때부터 듣던 말은 '넌 참 냉정하다'.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른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무심하게 말을 던진다.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내담자는 부모의 그런 말에 뭔가 기분은 좋지 않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기에 그게 나라는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 내담자를 만나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가 받은 피드백과 본인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타고나기를 TJ이다. 'TJ가 어떻게 상담사를 해?'라는 생각들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때부터 내가 들었던 말이
'넌 참 정 없다', '넌 참 차갑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한두 번 들었는지 여러 번 들었는지 검증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에 항상이라고 느끼는 걸 보면 그 충격이 컸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남들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주로 엄마에게 듣는 말이었다. 엄마는 가족이니까 너를 위해 이런 말 해줄 수 있다며 대놓고 말하는 스타일이셨다. 그러고 보면 엄마도 TJ가 분명하다. (결국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 얘기!)
어릴 때 그 소리가 참 듣기 싫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그게 나라고 믿고 자란 것 같다. 그래서 늘 내 성격은 별로 좋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조금 나에게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아 내가 별로구나' 또는 '아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고, 거절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조용히 거리를 두곤 했다.
그래서인지 난 늘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 외롭고 힘든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나눌 생각은 못하고 그냥 혼자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게 바로 나니까. 누가 바꿔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고민을 좋은 어른과 나누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어른이 없었던 건 아닌데 안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인지 후에 이런 내 모습을 상기하며
딸들에게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대화들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자기의 성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성향이 갖는 장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며 성향 그대로의 가치를 깨닫도록 도와주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암튼 사춘기를 그렇게 외롭게 보냈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별로이면 살아서 뭐 하나 싶고.. 생각해 보면 그게 우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부족하고 별로라는 생각은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렸고 무기력감을 키웠다. 그래서 저녁에 잠들 때 아침에 눈을 못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죽을 용기도 없던 나는,
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좀 괜찮은 사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심지어는 '사랑의 은사'를 달라는 기도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우울가운데서도 내 생명을 지탱하게 해 준 힘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너를 만드셨다'는 창조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 같다. 그 믿음이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소망을 붙잡게 한 것 같다.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성향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내가 정이 없거나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빨리 인식하지 못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문용어로는 정서적 민감성이나 반응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정서적 민감성이 낮았던 내가 지금은 "선생님은 아무리 봐도 F인데??"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거다. 말이나 행동 태도에서 F가 가진 배려와 따스함이 있다는 거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일 수도 있고, 내가 부족한 만큼 부단히 노력한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T가 가진 특성을 가지고 이해해 본다면,
T라고 해서 모두 정서적 민감성이 낮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만 의사를 결정할 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그것이 공평하고 모두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합리적임의 기준이 중요한 가치와 맞닿아 있다면 얼마든지 가치에 따라 응용도 가능하다.
게다가 이런 성향들이 갖는 강점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의 수용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한 아픔과 좌절 상실을 극복해 본 폭넓은 경험까지 있을 경우, 상대방의 감정은 충분히 느껴지지만 그 감정에 휘청이기보다 객관적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을 유추하여 적절한 워딩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만지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거다. 이것이 공감이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입과 다르다.
F의 경우 정서적 민감성이 높고 감정이입이 빠르지만 공감은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서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서적 민감성만 높으면 그 아픔에 자신의 감정이 휘말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보다 자기 마음이 평안한 것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공감은 훈련이 필요하다.
내담자들 중에 TJ인 여성분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가끔 호소한다.
그들 중에 나와 비슷한 피드백을 받는 분들도 있다. 자신의 성향에 대해 주변에서 어떤 피드백을 받느냐가 참 다른 양상을 띠는데, 어릴 때부터 성향에 대한 고유성과 강점은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 주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그 기질이 갖는 약점이 행동으로 드러날 때 판단 없이 어떻게 보완할지 가르쳐주고 훈련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정서적 둔감성으로 인해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을 채 생각하지 않고 원리 원칙에 따라서만 판단할 때,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인식하도록 돕고 자신의 가치와 우선순위(관계, 가족, 존중, 하나 됨 등)를 기반으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면 좋을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면 좋다. 아무리 원리 원칙이 있어도 그보다 앞서는 소중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나도 내담자도 참 시원한 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내가 답답함으로 무겁고 힘들 때 나를 온전히 수용함으로 인한 시원함과 깊은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기에 이 내담자가 느꼈을 위로에 내가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