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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초 Apr 24. 2022

워킹맘은 정말 '민폐덩어리'일까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15

워킹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 이미지를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것 같다.

하나는 뭐든 잘하는 '만능 슈퍼우먼', 그리고 하나는 본인 힘들다고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도 뻔뻔스러운 '민폐'이미지.


물론 워킹맘의 '민폐'이미지가 전적으로, 그냥 다른 직원들의 피해의식에 불과하며 사실무근이라고까지 말하고싶진 않다.

여기엔 두가지 층위를 봐야 한다. 하나는 워킹맘/워킹대디가 법으로 규정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직원에게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육아기단축근무 등이다. 이는 법으로 규정돼있으며 사업주가 거부시 과태료를 내야하는 출산육아장려 정책이다. 따라서 굳이 불만을 제기하려면 국가에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현실상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안그래도 한명이 두세명의 업무량을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한 명이 임신출산을 이유로 장기휴직을 떠난다. FM대로라면 사업주가 공백을 채우기 위한 대체인력을 채용하는게 맞다. 그런데 안그래도 필요한 인력조차 제대로 뽑지 않고 있는 인원을 최대한 쥐어짜서 기업을 굴러가게 하려는 한국의 많은 사업주들이 그런 수고를 감내할까? 그보다는 남은 인원들에게 '좀더 힘 좀 써봐'라고 닥달하는 게 현실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숲을 보기보단 옆에 있는 나무에 잘잘못을 따지게 마련이므로 자연스럽게 남은 인원의 원망은 떠난 휴직자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건 휴직하러 떠난 워킹맘의 잘못도 원망감이 들 수밖에 없는 동료의 잘못도 아닌 그냥 사업주들의 주먹구구식 경영문화의 탓이다.


워킹맘이 복직을 해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시국이야 말할것도 없고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아기들은 수도없이 아프며 돌발상황이 생긴다. 더군다나 적어도 생후 18개월은 지나야 대충이라도 알 수 있는 발달문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지만 요즘은 너무 흔하게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에 조부모등 믿을언덕이 없는 워킹맘과 워킹대디는 교대로 연차와 반차를 써가며 공백을 메우지만 역부족에 다다르게 된다. 고민끝에 퇴사를 결정하면 '휴직은 있는대로 받아놓고 결국 먹튀하는 의리없는 맘충'소리를 듣는 것이다.


워낙 공사구분이 안 되는 한국 회사의 문화 또한 '공사구분이 돼야 하는' 워킹맘을 민폐로 쉽게 규정하는 것 같다. 나는 직업 특성상 퇴근후나 휴일에도 종종 업무관련 전화를 받는데, 간혹 업무관련도 아니고 전혀 긴급하지 않은 연락도 아무렇지 않게 일과 후에 하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결혼 전에야 그냥 좀 귀찮은 정도였지만 아이가 있으니 거슬림의 정도가 차원이 달랐다. 저녁때가 돼야 겨우 만나는 아이와 집중해서 놀아주고 있거나 혹은 어렵사리 잠을 재웠는데 울리는 진동소리란... 심지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용건으로 연락했다니. 몇 차례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아예 일정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방해금지모드로 설정해놓고 우리 가족의 휴게시간을 지켰다. 하지만 반대로 내게 전화를 건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애 낳더니 퇴근하면 '쌩'깐다고, 역시 애 엄마들이란 일터보다 가정이 우선이라니까 하면서 뒷담할지도 모를 일이다.


Luka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하지만, 소수라고 믿고싶지만 정말로 워킹맘을 무기로 다른 직원들에게 희생과 맞춰주기를 당연스럽게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적지않은 사회생활을 했으므로 그런 사례를 못 본 건 아니다.

예전 미혼 시절 다니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워킹맘 동료는 육아를 이유로 자주 동료 및 상사에게 배려를 요구했었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연차와 반차 뿐만이 아니라 은근슬쩍 아이 하원 시간이라, 아이가 아파서, 육아를 도와주시는 시어머니가 사정이 생겼다며 업무 시간 중에도 조기 퇴근을 하거나 심지어 협업을 해야 할 일에도 개인 집안사정 등으로 바빴다며 할 일을 하지 않아 나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심지어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 일 때문에 집에 가 봐야 한다며 윗선에 졸랐지만 허락이 안 되니 "나보고 가지 말라고 하면 남편이 연차를 내라는 거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는 부부가 '같이' 키우는 거다. 내 경우에도 내가 업무 스케줄 때문에 아이를 픽업하지 못하게 되면 당연히 남편이나 친정엄마가 하고 있다. 일부 워킹맘의 경우 자신은 아이 엄마니까 얼마든지 회사가 배려해줘야 하지만 '출세해야 하는'남편은 감히 휴가도 휴직도 쓰면 안 된다고 굳게 믿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 인사업무를 하고 있는 내 친구 중 한 명은 최근 회사에서 파트타임 직원을 채용했다고 한다. 오전 단시간 근무라 경력단절 여성을 주로 면접했다. 면접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출근할 수 있고, 모든 근무조건이 마음에 든다'고 의욕을 내비쳤던 이들이 막상 약속된 출근날짜가 다가오면 갑자기 전화를 해 "남편이 너무 반대를 해서 출근을 할 수 없다"며 입사를 취소했다. 심지어 어렵사리 기혼직원을 뽑아서 몇달 근무를 같이 하다가, 갑자기 아이가 아프다며 며칠째 회사에 나오지 않더니 갑자기 남편이 문자를 보내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다'고 통보한 적도 있다 한다.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겪고 결국은 젊은 미혼 직원을 채용하며 일단락됐다고 한다.


직장에서뿐이 아니다. 조리원 동기도 없었고 코로나에 원래 내향적인 성격에 이래저래 '엄마모임'에 속한 적은 한번도 없어서 실제 겪은 건 아니지만, 전업맘들 사이에서도 워킹맘은 '민폐'를 끼칠까봐 기피대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말인즉슨 아이들 하원이나 학원 픽업, 심지어 본인이 퇴근할 때까지 무상으로 아이를 '놀려'달라는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이웃 엄마들에게 하기 때문에 애초에 안 엮이려고 소외시키는 분위기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과 개인적인 문제들도 있고, 나역시 일하는 엄마로서 편견도 많이 작용했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정말 저런 사람들이 있다면 하다못해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도 모두 시간으로 쳐서 수고비를 드리는 판에 생판 남에게 자기 자식을 무상으로 맡기는 건 내 생각에 썩 상식적인 태도는 아니다. 애초에 2020년대 무한경쟁시대에 같은 엄마들이라고 해서 마냥 편한 사이일거라 믿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가치관이긴 하다.


나 역시 일과 양육을 저글링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입장으로서 1인 2역의 삶이 녹록치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이 고달프다고 해서 그 어려움을 남이 '당연히' 나눠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아이를 낳은 것도,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함께 하기로 한 것도 (완전히 자의라고만 하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다 성인인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짐은 우리 스스로가 짊어지는 게 맞다. 어렵다면 가족 내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당하게 경제적 댓가를 지급하고 전문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육아와 일을 함께하기에는 너무 척박한 사회가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를 남의 '선의'에 기대 해결하려는 태도는 어른답지 못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워킹맘이라고 하면 무조건 자신에게 피해를 줄까봐 세모눈을 뜨고 경계를 하는 자세 또한 '맘충론'과 다르지 않은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복직한지 1년이 좀 넘었지만 아직까지 육아를 이유로 동료들에게 업무적인 양해를 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일이기 때문이다. 무근거한 편견도, 그렇다고 남의 선의를 아무렇지 않게 악용하려는 뻔뻔스러움도 앞으로는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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