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다들 관념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단어들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건 아마도 '죄책감'일 것이다. 마치 검색엔진의 '자동완성기능'처럼(실제 검색창에 입력해 보니 죄책감이 뜨진 않는다), 의례 일하는 엄마는 아이에게 소홀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 미안해 할 거라는 짐작,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미안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도 있는 것 같다.
보통 아무리 자기 행복을 중시하는 엄마여도 어린 아이를 두고 직장에 나가면 미안함으로 눈물짓는다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까지 일을 한다는게 아이한테 미안해서 눈물 흘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끔씩 '좀 미안해야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막 복직했을 때는 아빠가 집에서 엄마보다 더 잘 놀아줬기 때문에 딱히 미안할 이유가 없었고, 단 나에게도 너무 힘들었던 육아를 남편이 또 똑같이 반복해서 할 걸 생각하면 남편의 정신건강이 걱정되긴 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무너지고 심지어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복직을 포기한다는 어린이집 입소도 너무 무난했던 탓(?)인지 미안함이 들지 않았다. 보통 아이의 분리불안 못지 않게 엄마의 분리불안으로 적응이 어렵다던데, 그보다는 생각 이상으로 너무 적응을 잘 하고 신나게 하루를 보내는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할 뿐이었다.
나는 왜 죄책감이 들지 않을까.
진짜 내 모성애가 부족해서일까.
물론 그래서일 수도 있다. 모성애를 수치화시켜서 남과 나를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이를 낳은게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든지 육아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고 행복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 입장에선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이건 아이한테는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할 생각이다. 뭐, 모든 걸 다 털어놓아야만 가까운 사이가 되는 건 아니니까.
출처: 픽사베이
하지만 조심스럽게 다른 이유를 좀 더 생각해봤더니, 나는 항상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선천적으로 육아를 잘 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체력이 좋고, 좋은 여건을 가진 엄마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부족한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가진 깜냥껏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완벽하게 해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는 그래도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취업준비생 시절, 거듭된 탈락에 나는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정말 자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공부와 스펙 쌓기, 취업준비로 활용하며 달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모습을 본 친구 하나가 "살면서 너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의 나는 단언컨대 그 때보다 10배는 더 노력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열심히 한다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건 건 알고 있다. 원래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근데 애초에 모태 엄마 체질이 아니라서 죽어도 육아를 '즐기는 자'가 못 된다면, 내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냥 열심히 하는 것 뿐이니까.
아이에게 내가 자랐던 환경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이라도 계속 하고 있고,
비록 때때로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고 가족에게 화나 짜증을 낼때도 있지만 그 즉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물론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고 기분이 엉망이어도 아이의 앞에서는 최대한 웃고 명랑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지칠 땐 육아서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직장일과 꼭 필요한 집안일 이외에는 개인 약속도 거의 잡지 않고 취미도 포기하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화하려고 애쓰고,
퇴근시간을 앞당겨 어떻게든 집에 빨리 들어가기 위해 아이가 잠들면 노트북을 켜고 회사일을 하다가 잠을 설치기도 하고,
아이의 발달과 성장에 필요한 최신 정보들을 항상 공부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늘 좋을 수만은 없는 부부 사이도 인내와 노력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어릴적 내가 받았던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남편과 함께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아이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아이 역시 자라면 좀 더 풍족하지 못한 가정환경을 원망할 수도 있고, 사랑 넘치는 엄마가 아니라서 허전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안타까워할지도 모른다. 좀 더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걸, 행복해할걸, 왜 그렇게 힘들어만 했을까 하고. 그런데, 아쉽지만 거기까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정도 노력은, 사실 요즘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하는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다. 물론 모성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죄책감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회적으로 권장되고 강요되는 부분도 크지 않을까?
죄책감은 비단 워킹맘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은 '애 유치원 보내고 왜 노냐'는 말로 전업맘들에게조차 또다른 죄책감을 강요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