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초 Apr 22. 2022

아이 잘 때 그냥 자면 안 돼요?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13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남들도 다 하는 출산 육아인데 솔직히 나도 잘 할 수 있겠지'라고 섣불리 장담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존경하게 됐다. 아니, 매일같이 밤을 새다시피하고 낮에도 거의 쉴틈없이 이어지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졸도하지 않고 버텨내는거지? 나는 여기저기 도움을 받아도 하루하루가 고비인데?


아이가 돌이 지나고 불완전하나마 수면 패턴이 잡히면서 조금씩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진 이후부터는, 세상에는 정말 '슈퍼맘'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기본적인 돌봄만 해도 거의 있는 힘을 다 쥐어 짜내야 할 판인데 그 와중에 운동도 해서 처녀적 몸매를 유지하고 집도 예쁘게 꾸미는 엄마들도 많다는 사실. 몸매관리는 놓은 지 오래고 집 청소도 기본적인 것 외엔 잘 하지 않는 나로서는 대체 한국인의 유전자엔 뭐가 있는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복직을 했다. 일과 양육을 함께 하는 것은 정말 매일이 한계를 시험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가사와 양육을 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매일같이 파김치가 된 몸으로 겨우겨우 애를 재우고 옆에서 보초를 서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간단한 스트레칭조차 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심지어 먹고 씻는 것조차 시간을 억지로 내야만 했다.


Sarah Chai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하지만 이렇게 분초를 다투는 워킹맘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기관리와 능력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슈퍼맘'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우리 모두는 24시간의 시간을 공평하게 부여받는데, 도대체 저들은 어디서 시간이 나는 걸까? 개인 시터라도 고용한건가? 아이들이 유난히 잘 자는 걸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아이 잘 때를 활용했다'고들 한다. 아이들이 밤잠에 들고 나면 부엌에서 공부를 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대학원 박사논문을 쓰고, 로스쿨을 졸업하고, 고시패스를 했다는 후기들이 너무 많았다. 최근에는 '미라클 모닝' 열풍의 영향인지 오전 4~5시에 일어나 자기 시간을 갖는 엄마들도 많다. 아침운동을 하고 어학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등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재충전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은 뒤로부터는 나 역시도 나만의 시간이 간절했다. 사실 나만의 시간이라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푹 쉴 수 있는 시간조차 없으니까. 자아실현 욕구도 애초에 휴식이 보장돼야 생겨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일과 육아 못지 않게 '나 자신'도 지켜야 한다는 말과 함께 밤잠을 줄여서 자기 시간을 확보해나가고 그걸 통해 아이만큼 엄마도 성장하는 경험담과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콘텐츠들을 본 우리같은 엄마들은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 이렇게 그냥 일만 하고, 육아만 하고 '수동적'으로 살아도 되나? 나도 뭔가 해야 하나?


하지만 얼핏 보기에 워킹맘의 행복과 자아를 챙겨주는 것 같은 이런 분위기를 다른 각도로 보면, 어쩌면 안 그래도 양육과 업무로 한계치에 다다를 만큼 '무리'하고 있는 요즘 시대의 엄마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을 지워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미 우리 세대는 어릴 때부터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학업에 매달렸고,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또 정신없이 스펙을 쌓아 취업을 위해 노력했고, 취업을 한 후에는 사내, 업계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고군분투했다. 여기에 아이까지 낳고 기르며 일까지 하는 우리는 이미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주마가편'이라는 말도 있지만, 말도 너무 많은 채찍을 때리면 목적지에 가기도 전에 쓰려저 버리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하물며 행복추구권이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자아를 찾기 위해 수면권을 다소 희생해서라도 자기 시간을 확보하는 분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무리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충분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믿어서, 체력이 뛰어나지 않아 아이가 잘 때라도 쉬어야 다음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평범한' 다른 엄마들에게 '너무 애만 쫓아다니지 말고 잠 줄여서 네 자신도 키우라'는 조언(?)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막상 애를 잠시 뒤를 미루고 나를 챙겼다간, 냉혹한 어미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면서 말이다. 결국 두 마리, 아니 회사 일까지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라는 건데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받는 것은 아마도 이 시대 워킹맘밖에 없지 않나 싶은 억울한 감정도 든다.


나는 아기가 자면 함께 잠자리에 든다. 꼭 같이 잠을 자는 건 아니지만 나도 같이 숙면에 들기 전까지는 그 짧은 시간은 온전히 내 휴식시간으로 삼는다. 전혀 알차게 보내지 않아도 되는, 그냥 스마트폰이나 보면서 뒹굴거려도 되는 그런 시간이다. 사실 살다 보면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 어떻게 매 시간 매 분초를 100%로 살겠는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우리 엄마들은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