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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확인, 첫 심리상담을 예약하다

먼저 나의 상처와 마주하기

by 뚜벅초


결혼식을 치르고 딱 두달여 간의 신혼생활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2년 4개월간의 연애기간 동안 나름대로 다양한 데이트를 했고 충분히 '바닥까지' 보며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까지 겪어봤기 때문에 신혼이 길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었다.

우리는 원래 딩크를 계획하진 않았지만, 아이가 찾아오면 낳고 아니면 이대로 신혼을 즐기면 되지...하는 조금은 안일한 생각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임신을 확인하게 됐다.


당연히 열심히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들처럼 미리 산전검사를 받거나, 식단을 조절하거나, 하다못해 엽산을 미리 챙겨먹지도 못했다.

심지어 임신확인 전날까지 신랑과 캠핑을 가서 맥주를 한 캔 마시기도 했다.

매사에 모든 걸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특히 결혼, 임신, 출산같은 중요한 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는 커녕 부담스러움과 공포심에 엉엉 울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준 덕분에 방황은 오래 가지 않았고, 나는 금방 마음을 추스르고 익일배송으로 엽산과 비타민D, 산모용 치약 등등을 구입해서 바로 필수 영양소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장소리를 듣고 병원에서 '안정기'라고 하는 12주가 될 때까지

남들보다 약한 입덧에 유산 위험이라든지 흔한 이벤트 하나도 없어서 신체적으로는 그럭저럭 평온했지만

정작 나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들에겐 생애 가장 꿈만 같다고 손꼽히는 어린시절에, 정작 좋은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늘 불행한 '아이'였던 내가 과연 한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내 제대로 된 기억은 20대 이후가 전부일 정도로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는 암흑과 같았다.

지금 와서 떠올려 보면 소아 우울증이 의심될 정도로 늘 기력이 없었고 심하게 위축돼 있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부모님의 불화는 어릴 때부터 계속돼왔고, '돈 없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온 가난한 집안에, 또래집단에서는 못 어울리고 언제나 기센 아이들에게 치여 살았던 기억만 아주 토막토막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내가 싫고 이대로는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성격을 바꾸기 위한 시도와, 또래집단에 끼기 위한 노력 끝에

20살 즈음에는 그럭저럭 일반적인 아이들과 비슷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암흑같던 어린시절은 점점 아무렇지 않게 잊혀져갔다.

언젠가 이력서를 쓰는데 내가 나온 초등학교와 중학교 이름이 헛갈려서 처음으로 내 기억에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겉보기엔 그럭저럭 평범해 보이는 성인이 됐다.

사회생활은 무리없이 했고 동성 친구들을 사귀는 데도, 마당발이나 '인싸'는 아니어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이성관계에서는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때부터 지속돼 온 낮은 자존감 문제도 있었던 것 같은데, 뭐 결과적으로는 (나처럼 연애에 서툴렀던)좋은 사람을 만나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미련도 후회도 없지만

뜻하지 않게 결혼을 하고 출산까지 앞두게 되면서

나는 오랫동안 외면하고 지내 왔던 내 안의 콤플렉스와 어둠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키워드인 '비혼', '딩크' 등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내 또래의, 혹은 나보다 조금 아랫 세대인 10~20대 청년들 사이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나 자신도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데 내 자식에게 이 고통을 물려주기 싫다"

"부모님 결혼생활이 불행했기 때문에 나도 굳이 똑같이 살기 싫다"

"부모님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컸기 때문에 나도 자식 낳으면 똑같이 화풀이나 하며 살 것 같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나 역시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 나 역시 평균 이하로 어두운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부모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우리 부모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이유로 나 역시 결혼을 미뤄왔고 심지어 결혼식 전날까지도 내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걸까 기대보단 걱정이 훨씬 컸을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부족한' 사람들도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누구나 다 '지 새끼'는 사랑하게 되기 마련이라고.

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기에 완벽만을 기한다면 그 누구도 부모가 될 자격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적인 결함과 평균치에서도 심하게 벗어나는 문제를 가지고도 '누구나 다 그래'라고 치부하며 안일하게 자녀를 낳아 기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대물림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가정을 너무 많이 봤다.

또 자기 '새끼'를 그저 사랑하는 것과 올바르게 훈육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요즘의 젊은 세대가 과거 세대와는 달리 부모됨에 대해 다소 심할 정도로 높은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를 검열하다시피 신중하게 결정하는 현상 자체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처럼 이미 부모가 되어버렸거나,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결함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런 고민 끝에 집 근처 상담소에 초기상담 예약을 했다.

다소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담이라면 대학교 때 무료상담을 한 번 받아보긴 했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내용에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상담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예약전화를 하는 데만도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발목을 잡은 것은 비용이었다. 한 시간 남짓의 1회 상담 비용이 10만원에 달하는 건 직장인이라도 진입장벽이 결코 낮지는 않았다.

적지 않은 목돈이 들었지만 다행히 남편도 내가 나아진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것을 지지해 줬다.


여담으로 나는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심리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계층, 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엄두를 못 내는 취업준비생이나 청소년,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에게 상담시설 비용을 일부 혹은 전액 지원하는 제도가 확산 도입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있다면 좀 더 대중화됐으면 한다. 취준생 시절 집안의 경제적 위기와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매일매일이 벼랑 끝에 놓여 있어 극단적인 선택조차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최저임금 수준인 알바생 시급에 고시원 월세까지 내려니 심리상담은 결국 꿈도 못 꿨던 기억이 난다.


내 상태를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상담 코스를 결정하는 초기 상담에서는 말 그대로 나의 문제와 고민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고,

상담 선생님은 12회기의 상담과 모래놀이치료를 권했다.

상담은 그렇다쳐도 모래놀이치료라니? 키즈카페에나 있을 것 같은 모래 놀이판을 인형이나 피규어로 꾸며서 '내면'을 표현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는데 도무지 와닿지가 않았다.

물론 이 생각은 회기가 쌓이면서 점점 오해가 풀리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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