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6년을 꽉 채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그 전에도 개인 일기 형식으로 사용하던 블로그가 있었다. 사실 그 블로그의 존재는 완전히 내 머릿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메인 블로그 운영경력과 수익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나는, 새로운 계정을 더 만들어서 서브로 운영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회원가입 버튼을 눌러 봤다(네이버는 1인당 3개까지 아이디 생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회원가입을 하려 하니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가 3개라는 알림이 떴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이디는 2개뿐인데..잘 보니 내가 아주 예전에 쓰던, 완전히 잊고 있던 아이디가 하나 더 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쓰질 않고 있다보니 몇 년 전까지 블로그를 팔라고 스팸 문자들이 날아와서 모조리 차단하고 나선 완전히 잊고 있던 계정이었다. 로그인을 하려 하니 해당 계정은 이미 누군가가 해킹을 해서 잘도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식방에서 불법 리딩방 모집 글을 올렸다며 아예 정지가 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인증절차 끝에 10년간 잊고 있던 아이디에 로그인을 했다.
블로그를 봤더니 마지막 글은 2013년에 멈춰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다. 20대 후반, 다니던 소규모 회사를 그만두고 공채를 준비하기 위해 재취준생의 길로 뛰어들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일기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스터디와 도서관을 다니며 공채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예상치 않게 취준 기간은 더 길어졌고, 때마침 부모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가정불화가 더 심해지던 와중이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끊겼던 모양이다.
27살. 그때는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도 여러모로 미숙하던 시절. 지금 가진 여유(?)와 노련함(??)은 없지만, 지금은 없는 열정과 꿈이 있던 시절이었다. 일과 육아에 치이며 현실에 치이다 못해 찌들어버린 내가 보기에 10년 전의 나는 마치 다른 존재처럼 희망에 불타고 있었다. 지금은 안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던 내가 있었다.
글 하나하나를 읽으며 잊어버렸던 추억들을 소환하던 중, 포스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13년 새해 목표를 써 둔 짧은 글이었다. 막 2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이런 신년목표를 써 놨다.
출처: pexels
<2013년에 내가 이룰 목표>
1. 언론사 최종합격하기
2. 연애하기
3. 해외 출장가기
(각 항목에는 그에 맞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음)
지금 보기에는 너무 소소해 보이는 목표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모두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것들이었다. 일단 1번은 당시 나는 서류전형에서조차 번번히 미끄러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명문대 졸업생이 즐비한 이 바닥에서 입구컷만 수십차례였다. 2번은 뭐 재벌이나 연예인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연애 그 자체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으실 분도 있겠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그 당시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한번도 못 해 봤었다. 안 한 게 아니고 못한거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저 글을 쓰던 당시 나는 같이 스터디를 하던 언니한테 연애 해 보고 싶다고 했다가 "현실적인 걸 바래야지"라는 면박을 들은 적도 있었다. 어찌나 인상깊었는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각난다. 그 언니는 지금 어디서 뭐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청첩장도 못 드렸는데..
3번은 왜 적었는지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해외여행을 안 가본 것도 아닌데, 아마 여행 말고 회삿돈으로 출장 가는 게 그 당시에는 되게 멋있어 보였나보다. 하지만 직장도 없던 당시의 나를 해외 출장 보내줄 회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까지 다녔던 회사도 모두 직원수 10명 미만의 초 소규모 매체들이어서 해외출장을 보내줄만한 곳들도 아니었다.
결론은? 저 3개의 목표는 2013년에 단 한개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라면 나는 이 글을 쓸 이유가 없었다. 2013년의 내가 쓴 목표들은 시차는 있었지만, 그리로부터 2~3년 안에 갑자기 모두 이뤄지고 말았던 것이다.
먼저 1번. 2015년에 한 매체에 최종합격을 했고(비록 지금은 퇴사해서 다른 곳에 다니고 있지만, '붙어서 정년까지 다닌다'고 소원을 빌진 않았으니 일단은 이뤄진 것으로 한다.)일반 대중들이 다 알만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당시의 내가 최소의 커트라인으로 생각했던 급여와 영향력을 가진 곳이긴 했다. 심지어 한 번 서류 탈락했던 회사였다. 나중에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첫 지원했을 당시에는 지원자의 학벌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는데, 명문대 신입들을 뽑아놨더니 교육만 받고 모두 나가버려서 그 이후로는 학벌 상관 없이 경력이나 역량을 주로 보고 뽑았다고 했다. 그래서 중고신입인 내게 유리했다는 얘기였다.
2번. 그뒤로도 연애는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취업준비생 신세였기 때문에 애초에 만남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취업을 했고 2016년에 친구 대신 나간 소개팅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2019년에 결혼을 했다. 거의 30살까지 '모태솔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까지 낳은 걸 주변 사람들은 많이 신기해했다.
3번. 2015년에 잠시 다니던 회사에서 당시 부서장이 나를 마음에 들어해서 창간 후 처음으로 내가 해외출장을 가게 됐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맑은 백두산 천지를 봤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해외출장이 쏟아지면서 우리 부서 모든 선배들이 해외출장을 한 번씩 다녀왔다. 그리고 워낙 출장건수가 많아서 이례적으로 신입인 나에게도 해외출장 기회가 떨어졌다.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8층을 올라가고 자유의 여신상도 봤다.
평소 '시크릿', '끌어당김의 법칙' 따위를 사이비나 미신이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던 나였다. 어차피 인생은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뭘 해도 안 된다는게 내 지론이었다. 그러나 10년 전의 내가 써 둔 목표를 보고, 지금의 내 삶은 과거의 내가 끌어당긴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 3가지가 저절로 된 건 아니었다. 저 목표를 쓴 시점 이후로 나는 정말 그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서 최악의 제반상황에도 불구하고 취업준비를 했고, 취업을 하니 출장 기회도 생겼고, 자신감이 생기니 다시 소개 자리에도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건 연결돼 있었다.
당시에 나는 최악의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도 틈틈이 좋아하는 맛있는 걸 먹었고, 일상 속 기분 좋은 사건들을 기록하며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좋은 기분'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말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자기계발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패턴을 나도 모르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만 아는 그 블로그에 10년 만의 새로운 글을 썼다. 20대의 내가 30대의 내게 준 선물처럼 30대 지금의 나도 40, 50대 미래의 나를 위한 뭔가를 남기고 싶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쓰다보니, 뭔가 하나가 걸렸다. 10년 전과 달리 가정을 이룬 나는 그 어떤 개인적 목표보다도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었다. 가족이 잘 되지 않으면 나의 행복도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항목에 앞서 이렇게 남겼다.
1. 아이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잘 키워내기
2. 남편과 화목하게 해로하기
이 밖에 몇 가지의 개인적인 목표들이 있지만 사실 위의 두 가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원가정의 해체와 형제의 정서적 어려움을 생생하게 옆에서 보고 겪은 나로서는 가정의 화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에 불과해서 무슨 '목표'씩이나 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역시 노력과 운이 필요한 영역임을 알고 있다.
2023년도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늘은 꿈 많고 패기에 찼던 27살의 나에게 우선 감사하고 싶다. 곧 다가오는 새해를 앞두고 이번에는 뭔가 이루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기분 좋게 쓰고, 상상하고, 이뤄질 것이라고 믿어 봐라. 다소의 시간차는 있겠지만 언젠가 그것은 당신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