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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 동기'를 안 만든 이유

독고다이 육아도 할 만해요

by 뚜벅초


육아를 한 지도 100일이 넘었다. 밤잠조차 제대로 못 자던 50일을 넘어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니 아기는 여전히 어리지만 신생아 티를 제법 벗은 모습이다. 기대하던 '100일의 기적'은 딱히 없었지만 가장 좋은 점은 유모차를 끌고 집 앞 공원 산책이라도 나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마침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생활방역으로 완화되고, 그간 접종 때 외에는 거의 집밖에 나가지 않던 오랜 칩거생활을 끝내고 집 근처 공원 한 바퀴, 평일 낮 인적이 드물 때 수유실이 갖춰진 대형 쇼핑몰 산책 등을 시도했다.

난생처음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다 보니 같은 처지의 유모차 무리들이 자주 보였다. 비슷비슷한 개월수의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 모임으로 보였다. 아마도 조리원, 문화센터, 어린이집, 맘카페 등에서 어울리게 된 엄마들 모임이겠지.


아기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은 입을 모아 '육아 동지'가 꼭 필요하다고들 했다. 창살없는 감옥이나 다름 없을정도로 갑갑한 육아 일상 속에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과 차 한잔, 점심 한끼라도 하며 숨을 돌리면 활력소가 되고, 육아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도 많이 얻게 된다는 얘기였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기를 낳고 가장 먼저 조리원에서 친구를 사귀게 된다.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혹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혹은 수유실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가 자연스레 말을 트고 연락처를 교환하게 된다고 들었다.

나는 조리원에서 따로 동기를 만들지 않았다. 애초부터 만들 계획이 없었다. 일부러 조리원도 공동 식당이 아닌 개별 방으로 식사를 갖다 주는 곳으로 선택했다. 내가 있던 조리원에서도 그 와중에 안면을 트고 어느 정도 친분을 쌓는 산모들도 있는 것 같았지만, 부러 친해지기 위해 다가가지는 않았다. 사실 조리원에 있는 동안에는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휴식하기에도 바빴다.

임신 때부터 조리원 동기 모임이 과연 내게 활력소가 될까, 라는 생각에 다소 의구심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힘을 얻기보다는 기가 빨리는 편이었고, 혹여나 맞지 않는 사람과 어쩌다 친해져 단톡방 같은 곳에라도 들게 되면 추후 거리를 두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가뜩이나 정신없고 바쁜 육아중에 새로운 스트레스거리만 될 것 같았다.


1128931036.jpg 출처: 게티이미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난, 단지 비슷한 시기에 출산하고 같은 곳에서 몸조리를 했다는 것 외엔 이렇다 할 공통점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끼리 본의 아니게 껄끄러워질 관계가 자연스레 상상됐다. 굳이 엄마들 모임이 아니더라도, 서른이 넘은 후 친구 관계는 그 이전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아무리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사이라도 서른 즈음 직장이 달라지고, 연봉이 달라지고, 결혼 시기가 달라지고, 임신 출산 시기가 달라지면 묘하게 형성되는 우열 관계가 서로를 불편하게 해 멀어지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관계가 단절되지 않더라도 단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골라내 대화해야 서로 상처를 받지 않았다. 이 작업조차 기가 빨려서 결국 경쟁할 필요가 없는 가족, 연인이 친구의 자리를 대신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비슷한 시기에 출산해 함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이라는 말에는 힘든 육아를 함께 이겨내는 든든한 동료로서의 장점보다는 '자칫 서로 비교하고 마음 상하기 좋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차라리 아이들의 연령대가 약간 다르다면 굳이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한날 한시에 태어난 아기들이 누구는 목도 못 가누는데 누구는 뒤집기에 배밀이까지 하고 있다면 과연 뒤처지는 쪽은 앞서는 쪽을 평정심으로 대하기 쉬울까. 집에 와서 죄없는 아기에게 '너는 왜 그리 늦되니'라고 짜증을 내게 되진 않을까. 내 새끼가 누구에게도 지게 하고 싶지 않은 게 부모의 마음인데.

육아 정보나 도움을 얻는다는 말도, 만약 둘째 이상을 키우는 엄마들을 만난다면 조금 얘기가 다르겠지만 비슷비슷, 고만고만한 '초보 엄마'들끼리 얼마나 경험치가 다를지도 의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조리원 동기 없이, 그 외의 어떤 '맘친구' 하나 없이 100일 넘게 육아를 지속해오고 있다. 육아는 역시나 예상대로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기엄마 친구가 없어 아쉬운 적은 아직까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휴직 전 이런저런 잡다한 인간관계에 치여 스트레스받던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져 오히려 평온하다는 생각도 든다. 때로는 며칠째 울리지 않는 카톡을 보면 직장 다닐 적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씩 쏟아지는 메시지들에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조리원 동기가 없어도 나는 육아의 애환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들은 있다. 나보다 2년 먼저 출산을 해 이미 두돌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나보다 한 발 앞선 시점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다. 이제는 아이가 커서 쓰지 않는 육아용품도 물려받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육아 동지가 되어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남편이다. 키우고 있는 아이가 같으니 당연히 질투와 비교를 할 필요도 없다. 같은 고민을 같이 하니 누구보다 마음도 잘 맞는다. 내 휴직 기간이 끝나면 바로 이어 남편이 1년간 휴직을 하고 아기를 돌볼 계획이다.

남들은 애 낳고 부부간 사이가 멀어졌다길래 임신 때는 혹시나 그렇게 될까봐 무척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우리의 경우엔 둘만의 시간을 갖기가 좀 힘들 뿐 사이가 나빠진 건 없었다. 딱히 남편을 잘 만났다기보단 요새는 많은 남편들이 육아에 매우 주도적으로 변한 듯하다. 사실, 어쩌면 육아의 가장 든든한 동지는 배우자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

초보 엄마로서 부족한 육아 지식과 실시간 정보는 인터넷 검색과 커뮤니티를 이용하면 거의 무리없이 습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불확실한 건 직접 관련 기관에 문의하면 된다. 보건소에 전화해 접종을 어디서 할 수 있을지 물어보고, 아이 건강에 대해선 소아과에 가서 직접 물었다.


혹자는 '맘친구'를 만드는 건 엄마를 위한 게 아니라 아기의 사회성 발달을 위한 필요악(?)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좀 회의적이었다. 어릴적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당연히 우리 집(이 딸린 학원)은 온갖 동네 아이들이 몰리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또래뿐 아니라 언니, 오빠들과도 가족처럼 지내곤 했다. 나와는 달리 사교성이 좋은 우리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도 문을 늘 열어놓고 같은 동 엄마들과 가족처럼 지내며 왕래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간 난 사회성이 좋기는 커녕 친구 사귈줄도 몰라 늘 쭈구리가 돼 있었다. 대인관계는 성인이 될 때까지 나를 괴롭히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천적으로 내성적인 탓도 있겠지만 매일같이 불화와 싸움이 일상적인 부모님의 사이에서 만성적으로 관계에 불안을 가진 탓이었던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아이 친구를 엄마가 만들어준다는 것도 딱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이가 사회에서 자신감 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화목한 가정 환경을 만들고 자존감을 심어주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얼마전 우리 집에 찾아와 아기를 살피던 육아 전문가 분이 내게 물었다. "혹시 조리원 동기 있으세요?" "아뇨" "아, 다행이네요. 아기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게 '비교'하는 거에요. 엄마들 모임 갖고 나면 괜히 다른 아기랑 비교하게 되잖아요. 비교하지 않고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춰 여유를 갖고 지켜봐 주세요."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조동'을 만들지 않은 게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다가도 언젠가는 나도 동네 맘친구가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앞으로 아기가 자라면 문화센터, 어린이집, 학교 등 갈 곳은 무궁무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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