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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예민함'도 사랑하기

아기 엄마들 공공의 적인 '예민한 아이'를 위한 변명

by 뚜벅초


조리원을 나와서 본격 육아를 시작하게 됐다.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 지 몰라 남편과 둘이서 무작정 아기를 바운서에 앉혀 놓고 하루 종일 흔들다가 늦은 새벽이 돼서야 겨우 아기를 재운, 그야말로 멘붕의 첫날을 보낸지도 벌써 몇 주가 흘렀다. 아기는 이제 신생아기를 벗어나 갓 태어났을 때보다 몸무게가 거의 1/3 이상 늘어났지만, 여전히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육아를 시작하자마자 어째서 고문을 시킬 때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인지 단박에 이해하게 됐다. 수면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박탈된 삶은 생각보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조리원 신생아실 선생님들과 산후도우미 등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 아기는 대체로 순한 편이라고 한다. 하긴 예방접종을 맞아도 한번 '으앙'하고 말고, 자다가 큰 소리가 들려도 쉽게 깨지도 않는다. 모유양이 부족해서 혼합수유 중인데 무엇을 줘도 다 잘 먹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기는 잠이 적은 편이다. 신생아들은 하루 16시간 이상을 자고 한 달이 지나면 보통 4~5시간 연속 '통잠'을 자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우리 아기는 3시간 이상을 자면 기록적일 수준이다. 사실 지금 이 글도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한 번도 잠들지 않고 침대에만 내려놓으면 울음을 터트리던 아기를 어렵사리 재우고 쓰는 글이다. 키가 큰 편이라 그런지 성장통도 심해서 자주 앓는소리를 내고 먹성이 좋아서 용량을 늘려도 두 시간에 한 번씩은 맘마를 드셔줘야 한다.


모든 엄마들이 원하는 '순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4~5시간씩 통잠을 자 줘 부모의 수면권을 보장하고,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잔병치레가 잦지 않으며, 자라나서는 편식이나 어린이집 등원거부 등 없이 낯선 환경에서도 곧잘 적응하며, 양육자의 지시를 잘 따르고 일반적인 발달 표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아이일 것이다. 당연히 이런 아기는 몹시 드물고, 잠 없는 우리 아기처럼 대체로 순한 아기라고 해도 최소한 어떤 면에서는 예민한 부분이 있다. 하물며 모든 면에서 까다롭고 예민한 아기들은 부모에게는 스트레스의 대상이,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엄마가 고생하겠네'라며 동정과 우려의 대상이 된다. 더 나아가서 어린이집과 학교에서는 당연히 적응이 남들보다 어려워 '문제 아이' 취급을 받기도 한다.


655313994.jpg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바로 그 문제의 예민한 아기였다. 우리 엄마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는 이런 표현이 없었겠지만) 등센서'는 기본이었으며 잔병치레도 심하고 잠 없고 잘 깨서 양육자를 피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신생아 때야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좀 더 자라서 단체생활 적응도 잘 못 했으니 손이 많이 가는 아이인 건 확실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예민한 아이에게 필요한 '섬세한 관찰과 배려'를 해야 한다는 육아 지식이 당시로서는 보편화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천성적으로 좀 무심한 우리 엄마는 가뜩이나 생계에 쫓기느라 예민한 딸의 감성을 어루만질 정신적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넌 왜 이리 수월한 게 없고 유난이냐'고 타박을 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그저 그렇게 타고났을 뿐이었고, 문제는 '나는 남들과 다르게 유난스럽고 예민하니까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내 유년기의 잠재의식에 뿌리깊게 열등감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남의 눈치를 많이 보던 나는 내 부정적 감정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더 조심하게 됐고 자아상은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어디 가서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유난스런 것이니까 그냥 넘기자'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것이 지나친 자기검열임을 알게 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이에게 '왜 잠을 자지 않느냐',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느냐' 라는 식의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꾹 참을 때도 많다. 하지만 내가 단지 내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의 단점(?)을 섣불리 지적하며 '너는 애가 왜 이러니'라는 식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했을 때, 과거 내가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도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나도 그랬듯이 아기들은 자기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런데 그 사랑해 마지 않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아이는 누구를 미워하게 될까.


물론 나 역시 엄마가 되고, 누군가를 양육하는 입장이 되니 아이의 예민성을 감당하는 것은 속된 말로 '못 할 짓'이라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로 힘들다는 게 이해가 된다. 객관적으로 그리 예민하지 않은 편인 우리 아기도 밤새 몇 시간 째 뜬눈을 마주하다 보면 '이맘때 아기들은 먹고 자기만 한다는데', '이제 4~5시간씩 통잠을 자는 아이들도 많던데'라는 생각이 들기 일쑤다. 여기서 자칫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아기에 대한 원망으로, 아기의 '남다름'에 대한 미움으로 번지기 딱 좋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아이의 예민함, 남과 다름, 양육자를 힘들게 하는 점은 절대 아기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타고났을 뿐이고 누구도 원한 게 아니다. 심지어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임신 중 받았던 산모교육과 각종 육아서적 등을 종합해 보면 아이의 유형은 크게 순한 아기, 발달이 더딘 아기, 까다로운(예민한) 아기가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은 비중이 평범한 순한 아기이며, 약 10% 내외로 예민한 아기 등이 있다.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서 잠도 없고, 음식을 가려서 아무거나 먹이기도 어렵고, 낯을 심하게 가려 어린이집에 보내는데도 곤욕을 치르는 이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기들은 그만큼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지능지수가 높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오늘도 나는 잠이 없는 아기를 돌보느라 밤잠을 설치고, 모유수유 중이기 때문에 커피를 마실 수 없어 찬물로 세수를 하며 잠을 쫓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낯선 세상에 던저져 아무것도 모른 채 온몸으로 모든 걸 감당해내야 하는 아기 역시 녹록치 않은 밤을 보낼 것이다.

그 어릴 적 내가 타고난 성격을 바꿔야만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런 마음 때문에 언제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남의 인정을 갈구했던 시간들을 내 아이는 겪지 않았으면 한다. 살다보면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지 않는가. 내 아기에게는 적어도, 훈육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어린 시기만큼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사랑해 줄 한 사람'정도는 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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