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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아빠랑 친했으면

'허수애비'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닙니다

by 뚜벅초

휴직 전 직장을 다닐 때, 직장 동기들끼리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자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아빠 얘기가 나왔는데, 여기저기서 '난 아빠랑 얘기도 안 한다', '아빠랑 안 친해서 어색하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아빠와 어색한 사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대화를 하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집에 있는 시간보다 없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아빠와는 딱히 애착이라고 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난 그 이유를 부모님 사이가 나쁜 탓으로 여기고, 우리 가정만의 독특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범한 한국의 부녀사이였다니?


생각해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80년대생 전후인 우리 세대가 자랄 때는 육아와 가사란 당연스럽게 여자의 몫이었다. 바깥일로 바쁘신 아빠는 그냥 아침일찍 출근할 때, 밤 늦게 퇴근해서 저녁 먹을 때나 얼굴 보는 게 마치 '모범적인 가정상'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아빠는 집안일에 서툴기 때문에 주말에 '짜파게티 요리사'만 해도 자상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나마도 하지 못하는 많은 아빠들은 TV 리모컨을 붙잡고 주중에 못 잔 잠을 몰아 자면서 놀러 나가자는 아이들의 성화를 귀찮아 하는 게 평범한 모습이었다. 아, 물론 그렇게 가족 나들이를 나가도 아이들을 케어하는 건 철저히 엄마의 몫이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면 아빠는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데 엄마들은 대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우는 아이들을 먼저 챙기고 나서야 부랴부랴 밥을 먹는 게 보통이었다.


이런 시대를 겪었다 보니 자연스레 장성한 자식들과 나이든 아빠의 관계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드물게 가정적인 아빠를 둔 자녀들은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가부장적 아빠를 둔 우리들은, 엄마랑은 속 얘기까지 다 털어놓는 반면 어쩌다 아빠와 단 둘이 남게 되면 어색하게 안부를 주고받거나 TV만 바라보게 되곤 한다. 그나마 어색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자녀의 마음도 관심사도 헤아릴 줄 모르고 올바른 감정표현이나 훈육 방법에 대해서 배운 적도, 생각해본 적도 그다지 없는 많은 아빠들은 폭력에 가까운 훈육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성인이 되도록 앙금으로 남은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내 또래의 많은 여자들은 아빠를 '용서'하는 것이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세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빠들도 많아지고, 수유실에서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아빠들도 흔히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TV 다큐멘터리 속 북유럽 사회에서 마치 상상의 동물처럼 존재하던 '라떼파파'가 이제는 제법 현실 속 존재가 되어가는 듯하다. 우리 회사만 해도 사기업임에도 육아휴직을 쓴 남직원들이 있고, 최소한 아이가 어릴 땐 부부가 같이 고생을 하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남편 역시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랐지만 육아에 적극적이다. 최소한 '아내의 일'로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내가 산후조리 중이라 몸이 안 좋을 때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새벽수유를 했고, 힘든 교대근무를 하면서도 아이를 위한 거의 모든 일정에 동행한다. 덕분에 나는 출산 후 몸도 풀리지 않아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괴로웠던 신생아 육아 시기를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어린이집 보내는 시기, 미디어를 접하게 할 시기부터 이유식 스케줄이나 놀이 방법까지 크고작은 일을 공유하며 한 팀으로서 육아를 해내고 있다.

내년 초까지 이어질 내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 복직하면, 남편이 곧바로 1년간 육아휴직을 내 '전업주부'로서 육아와 살림을 도맡을 예정이다. 비록 소득은 줄어들겠지만, 어린이집을 최소한 두 돌 이후에 보내겠다는 우리 부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와 같은 방식이 모든 가정에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건 알고 있다. 아내가 아무리 남편의 육아 참여를 독려해도 소극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며, 마치 우리 부모님처럼 부부 사이가 이미 극도로 나빠져 그런 대화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드물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여자들 스스로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경우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세대도 엄마가 전담하는 육아를 받고 자라왔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곧바로 행동에 옮기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 듯하다. 더군다나 남편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그런 남편을 억지로 설득하느니 '그냥 내가 하고 말지'하며 체념하게 될 수도 있다. 복직을 해야 하거나,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면 옆에 있는 건강한 남편보다 늙으신 양가 어머니들에게 SOS를 치는 게 도리어 자연스러운 아이러니다. 심지어 남편이 먼저 도와준다고 해도 영 서툴러서 마음 놓고 맡기기가 불안하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엄마들도 모두 서툴렀다. 여자라고 해서 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툰 솜씨로라도 해 오고, 그러다 보니 요령이 붙어 점점 능숙해지고 쉬워지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처음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안아 볼 때는 어디에 손을 대야 할 지도 겁이 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지금은 몇 달 지났다고 혼자 아기 데리고 외출도 쉽게 하는 편이다.

남편이 서툴고 못미덥더라도 자꾸 맡겨야 남편도 아빠로서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텐데, 적지 않은 엄마들이 그래도 불안하다는 이유로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심지어 남편이 먼저 자기에게 아이를 맡기고 좀 쉬고 오라고 해도 아이와 떨어지는 게 불안해서, 남편이 애 보는 걸 보면 못미더워서 맡긴 적 없다며, 심지어 미혼인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아기를 데리고 나가 대화도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엄마들은 지금까지 아이랑 떨어져있던 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하는데, 만약 그 분이 싱글맘이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육자들의 인식이 그대로라면 아무리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어도 유명무실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기업에서 아빠 육아휴직을 독려한다고 해도, '그래도 어떻게 남편을 집에서 놀게 하냐'며 아내 스스로 말리는 경우도 많고, 육아휴직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직 준비나 창업 준비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하고 여전히 육아는 아내의 몫인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아빠의 육아참여는 아이의 사회성과 정서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여러 연구결과로도 증명된 바 있다. 센트럴 런던대학 연구팀이 100쌍의 부모와 아이들을 14년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빠가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것이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아 때 아빠가 목욕을 시키지 않은 아이들 중 상당수는 친구 사귀기에 어려움을 겪고 불안정한 자아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아빠와 목욕을 자주 한 아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상대적으로 적게 겪었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의 연구에서도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사회성이 1.8배나 높게 나타났다. 어릴 적 사회성 부족으로 힘든 학창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자식 때문에' 참고 사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나와 남편이 한 팀이 되어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었고, 다행스럽게도 남편 역시 여기에 동의하고 실제로 협조적이다. 우리 부모 세대의 많은 부부들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신혼 때의 애정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엄마는 아이를 위해서만 존재하며 더 나아가 '집착'에 이르고, 그 아이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면 "내가 너만 바라보고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푸념이 이어지는 가정이 당연스럽게 '디폴트'로 여겨지는 전형적 한국의 부부상은 우리 세대에서 이만 끝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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