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악'의 근원, 집 집 집!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 중 일부는 이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까짓 예식장이니 스드메니 반지니 하는 것들 다 합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 뭐, 진짜 문제는 집 아닌가?'
맞다. 결혼준비가 돈 없으면 못하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결국 집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이를 낳을 지 여부도 주택소유나 크기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우리는 양가 지원을 단 1원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조건의 전세대출을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의 결혼준비 과정은 우리가 모은 (얼마되지 않은)돈이나 월급으로도 충당이 됐지만 집은 은행 돈을 빌리지 않으면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결혼전 자취하며 월세를 내본 경험으로 월세는 오히려 돈이 없으면 피해야 하는 쪽에 가까웠다. 요즘은 원룸도 월 40은 넘게 줘야 하는데 이사나갈 땐 약간의 보증금 외에는 전부 '없는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8년 당시에도 이미 전세는 꽤 올라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이왕 대출받을 거 더 받아서 집을 아예 사라는 말도 나왔지만 신축에 대한 열망이 있던 남편은 전세를 살면서 청약을 도전하는 쪽을 택했다. 결과적으로는 남편이 옳은 선택을 했다. 결혼한 지 2년차에 신혼부부 대상 주택 청약에 당첨됐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신혼집 마련으로 고민을 하다가 본가에 들렀는데, 문득 TV를 보던 아빠가 "요새 젊은애들 결혼 안해서 서울에서 이것저것 많이 퍼주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나 예비신랑이나 둘다 경기도 출신이기에 서울살이는 아예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그 말에 진짜로 서울시 정책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경기도보다 좋은 조건으로 신혼부부 대상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경기도라면 우리는 이미 소득조건을 넘겨서 못 받았을텐데, 서울시에서는 가까스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많이 나오는 얘기로 부동산 지원 정책의 모든 포커스가 '자산'이 아닌 '소득'에 맞춰져있다 보니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젊은 직장인 흙수저들은 가장 불이익을 본다고들 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부모님 노후 준비가 완비돼 있어 그걸 믿고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준비도 부모님 지원을 받아 여유롭게 했지만 소득이 없어 각종 혜택을 다 받을 수 있는 사례도 있었다. 그 지인은 '부모님 능력도 내 능력'이라며 들으란 듯이 자랑을 하기도 했지만, 뭐 어쨌거나, 물론 소득도 낮고 수저도 없어 정말 더 어려운 분들도 많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불공정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오는데 이제 좀 재고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재고를 일부러 안 하는 걸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전세대출과 함께 약간의 신용대출을 추가로 더 받아 시세가 저렴한 은평구의 한 미니투룸에 우리의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비록 짐을 넣으니 꽉 찰 정도로 좁은 규모였지만 두 사람이 살기엔 더없이 좋았다. 뽀송뽀송한 새 이불을 깔아놓으니 신혼의 단꿈이란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아기가 빨리 찾아온 편이다. 결혼식하고 2달이 조금 더 지나서였으니, 신혼을 막 엄청 오래 가질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하도 '아이는 계획한다고 바로 생기는게 아니라 최소 6개월은 걸린다'고들 협박해서 그걸 감안했더니 놀랍게도 바로 생겼다. 하기사 말이 그렇지 주변의 많은 부부들이 허니문베이비 혹은 속도위반 결혼을 할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말이다. 말이 샜다. 아무튼 미니투룸에 수많은 아기용품을 갖다 놓으니 둘이 살땐 너무 아늑하던 집이 몸을 뉘일 새도 없을 정도로 너무 비좁아졌다. 게다가 갑자기 옆 빌라에서 엄청난 공사소음이 들리고 완공되니 아예 빛이 들지 않게 되자 도무지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 역시 심한 육아우울증에 시달렸다. 언덕 위의 집이라 유모차를 끌기도 몹시 좋지 않았다.
다행히도 2년 계약기간이 채 되기 전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났고 우리는 즉시 경기도의 약간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여전히 20평의 작은 집이긴 하지만 그래도 빛 잘 들고 공원이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조금씩 육아우울증도 좋아지고 아기도 자주 산책을 다닐 수 있어 여러모로 좋았다. 비록 직장과는 멀어졌지만. 이때 처음으로 돈이 없어서 결혼을 해도 애를 못 낳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실감이 났다. 더불어 아파트 값이 잡히기 전까지는 출산율은 아마도 계속 하락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었다면 몰라도 아이계획이 있다면 신혼집을 고를 때도 최소 어느 정도 이상의 평수가 필요했다는 걸 알았다. 여기에 추가로 채광, 주변환경(소음을 유발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계단이나 언덕이 없어 유모차나 보행이 서툰 아기를 동반하고 다니기가 안전한지 여부, 녹지시설, 문화센터 등이 있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근처에 있는지 여부와 학군 등도 따져야 하는 것 같다. 아직 아이가 없는 예비부부 입장에서 이런 걸 두루 따지기도 어렵고 체감도 안 나겠지만.
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 단칸방에서도 애 둘셋 낳고 잘 살았어'로 시작하는 말은 믿지 말아라.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막 크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비록 서울에서는 꽤 멀어졌지만 위의 조건을 대부분 갖춰 아이를 키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나는 어째서 사람들이 신혼집으로 '신도시 30평대 초품아 신축 아파트'에 그리도 열광하는지 아이를 낳고 대번에 깨달았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작고 가난하게 시작한 부부들이 마냥 절망만 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라는 건 아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시작했고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꾸준히 알아본 끝에 새로운 집에 청약이 당첨되기도 했으니까. 현실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 짓눌리다보면 가능성 또한 비껴나가게 되는 것 같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 있되 항상 먼 곳을 바라보며 대비해나가는 정도가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