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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초 Mar 13. 2022

글쓰기의 딜레마

그냥 주절주절...

브런치를 포함해 다양한 SNS를 운영하고 있지만(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브런치의 경우 유독 '완성된' 글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좀 있다.


사실 그래서 할 말은 많아도

지금 쓰고 있는 글 같은 넋두리스러운 글은 잘 안 올리게 되는 편이다.

기승전결이 갖춰지고 독자에게 뭔가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룰이 있는 게 아닌데도

브런치가 그냥 블로그도 아닌데 아무 잡담이나 올렸다간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말을 들을 것 같은 무언의 압박감;


여기서 딜레마가 생기는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글을 쓸 때

정말로 쓰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주제가 있을 때,

누구라도 붙잡고 토로하고 싶은 생각과 감정이 들 때,

글을 써야 가장 잘 써지고, 실제로 반응도 좋았다.


그리고 보통 이런 감정과 생각들은, 어떠한 일을 겪는 '한복판'에 있을 때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인 일들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의 일은

어떻게든 활자화하기 조심스럽다.

아직 출판을 한 것도 아니고 온라인상의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글들이라

삭제를 할 수도 있지만(실제로 너무 오래 지나서 아니다 싶은 글들은 삭제를 한 적도 있다)

일단은 구독자 분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 것이고,

심지어 메인 같은 곳에 오르면 불특정 다수들이 읽게 되며 일부는 나를 알아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묵혀두고,

시간을 가지며 어떻게든 '결론'이 난 일을 쓰려고 하면

막상 그 일을 다 겪고 난 후에는 내 감정도 너무 평온해져서

더 이상 글이 쓰기 싫어진다.

혹은 쓰더라도 그 '날것'의 감정이 없어진다. 지나치게 평온하고 침착해져서 밋밋한 글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심지어 시간이 더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자체가 잘 안나서 못쓰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연재한 결혼준비기도

곧 결혼한지 3주년이 되니, 이만하면 쓰기에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 글을 써 봤는데

한참 결혼준비를 할 때나 신혼일 때 들었던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었다.


그렇다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일, 지나치게 현재진행형인 일을 글로 쓰자니

나중에 상황이나 생각이 바뀌게 될까봐,

그 때 가서 뒤늦게 미숙한 글을 올린 것을 후회하게 될까봐 조심스러워진다.


https://brunch.co.kr/@nanathecalico/21

출산하기 몇 주 전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감사하게도 포털 메인에도 뜨고, 많은 분들이 공감의 댓글이나 의견을 주셨다.

좋은 글이라는 과분한 칭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작 저 글을 쓴 나는 아이를 막상 낳아서 키운지 1년도 안 돼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말았다;

이곳에도 글을 남기며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둘이 살기에 딱 좋았던 투룸 빌라는 아이가 태어나니 턱없이 좁았고, 덕분에 우울증을 얻었으며, 결국 애 키우는 사람들이 대부분 선호한다는 학군지의 녹지가 잘 갖춰진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경험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건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버렸다.


나도 (저 글을 쓸 때만 해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애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든다=사교육비 정도로 막연하게 상상하고

사교육비 그까짓것 다 부모 욕심이 아니냐, 그냥 애는 몸 마음 건강하게만 키우면 되는데

괜히 옆집 애 1등하는 거 보고, SNS 보고 불안해서, '남보다 특별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괜한 욕심으로 아이와 부모 둘 다 불행해지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건 고작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물론 나 역시 아직 영유아를 키우고 있어서, 사춘기 이후의 육아에 대해선 전혀 모르기에 사교육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견해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서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게 자라려면 일정 평수 이상의 집과 차가 필요하다.

이건 욕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한다처럼 필수적인 문제다.

그리고 오늘날의 미친 집값을 생각해 보면... 평범한 서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랑으로'만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다.

(물론 남의 경제상황을 놓고 애를 낳아라 말아라고 간섭하고 악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리고 사교육 역시 단순히 내 아이가 남보다 뛰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키는 게 아니었다.

요즘은 아이가 태어나서 100일이 넘으면 소아과에서 정기적으로 '영유아 검진'을 받는다.

신체 사이즈부터 포함해서 발달 수준까지 체크를 하고, 심지어 키 몸무게 머리둘레는 '등수'까지 매겨진다.

발달의 경우 몇 개월 이상 늦으면,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받아보라고 한다.

이 검진을 받는 데 드는 돈이 수십에서 수백에 달한다.

검사 결과 장애가 있거나, 혹은 없더라도 발달이 또래보다 몇 개월 이상 늦다는 판정이 내려지면

당장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가장 저렴하고 기본적인 치료는 한 타임 당(한달이 아니다!) 5만원 정도, 더 고가의 경우는 수십~수백만원을 호가한다. 통상 수년씩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렇게 해도 '완치'가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모두 알다시피 발달 문제는 (장애가 있든 없든) 선천적인 요인이 절대적이어서다.

여기에 일반 아이들을 따라가기 위한 다양한 사교육과 주말, 휴일을 통째로 다양한 체험과 여행을 다니느라 쓰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어마어마하다.

우리 역시 아이의 발달이 늦다는 걸 알고는 그 전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방문수업을 바로 결제했으며

코로나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매주마다 산과 들로 전국 방방곡곡 체험을 다녔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솔직히 여행이라기보다 고행에 가까울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하면 조금씩이나마 미세하게 나아지는 아이를 보니 매일같이 오감발달에 좋은 체험장소를 검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거 다 상술이니까 휩쓸리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 기준 결혼 전까지 육아경험은 커녕 조카조차 돌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안 그래도 모든 것이 다 혼란스러울 초보 부모에게

'당신의 자녀가 발달이 비정상적으로 늦으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영원히 장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물론 치룔를 받는다고 해서 정상이 된다고는 안 했다)'고 전문가와 의사가 말한다면, 소신껏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을 강심장 부모가 얼마나 될까?


여기에 나처럼 워킹맘의 경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돌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경우까지 있다.

  

말이 너~무 길어졌지만

일련의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 나는 한없이 얼굴이 화끈거렸다.

특히 육아에 대해서는 절대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선 어떤 말도 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과

내가 출산 전 호기롭게 외쳤던, '돈이 없어도 아이를 사랑으로 잘 키울 수 있다'는 글이

이미 육아를 경험해본 선배 부모님들 눈에는 어찌나 나이브하게 보였을까 하는 부끄러움....

(한 마디 해 주고 싶으셨을 분들도 있었을텐데,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내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를 쓴다는 건 늘 어렵다.

정답이 없는 게 인생사인데

정답이 없는 글은 재미가 없고

정답이 있는 글은 오답이 되기 일쑤니...ㅠㅠ


그냥 그렇다고.

글이 조금 뜸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린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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