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 이상 들어봤을 법한 질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난 진지하게 산타의 존재를 믿었던 적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영악해서? 눈치가 빨라서? 뭐, 나름 그 당시로선 인지발달이 빠른 축에 드는 아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려운 형편에서 팍팍하게 살던 부모님이 딱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제대로 챙겨주신 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나의 어린시절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영 실망으로만 점철된 건 아니었다. 내게도 크리스마스 아침날, 머리맡에 산타 선물이 놓여져 있던 기억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쌩뚱맞고 엉뚱한 선물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6살 무렵이었을 거다. 그때 난 한창 장난감 가게에서 시선을 끌던 인형의 집을 너무 갖고 싶었다. 엄마 손을 끌고 너무 예쁘고 신기하다고 어필을 하기도 했다.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유치원(사실은 원비가 좀 더 저렴한 선교원을 다녔다. 크리스천 집안은 아니었다.)에서 돌린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에 소망을 가득 담아 인형의 집을 써 내기도 했다. 물론 산타할아버지는 그 소원을 들어주시지 못했다.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였을까? 유치원 산타 선물은 부모님이 사서 몰래 준비해 주는 것이었단 걸 어른이 돼서야 뒤늦게 알게 됐다. 우리 부모님은 자칭타칭 '방임형'이셨고, 일자리가 불안정한 아빠와 그 몫을 대신해 독박 돈벌이까지 힘겹게 했던 엄마는 성탄 선물까지 챙기기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인형의 집을 못 받고 다소 실망스럽게 잠자리에 든 나는 다음날 머리맡에 놓인 알록달록 예쁜 선물상자 하나를 봤다. 거기에는 매직으로 쓰여진 산타(?)의 메시지가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누가봐도 그것은 아빠의 글씨체였다. 너무 눈치가 빨랐던 나는 부모님의 필체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내용물은 내 머리보다 더 큰 파네토네 케익이었다. 건포도가 들어간 이탈리아식 크리스마스 빵이라고 한다. 6살의 어린 나는 그게 뭔지도 잘 모르고 파네토네라는 이름만 머릿속에 남았다. 건포도를 좋아했던 나는 그 빵을 꽤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술맛(?)도 나고, 달콤한 크림이나 예쁜 장식도 없는 파네토네는 6살 소녀와는 뭔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 빵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좁은 단칸방에서 지루하게 자라던 나는 거의 처음으로 특별한 날을 특별하게 보내게 되어 행복했었던 것 같다. 거의 매일같이 싸우던 엄마 아빠도 그날만큼은 사이좋게 빵을 나눠먹었다. 사실, 빵보다도 산타할아버지보다도, 늘 나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고 싸우기만 하던 부모님이 웬일로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게 한없이 기뻤던 것 같다.
이후 부모님은 하던 사업이 발전해서 단칸방보단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고, 경제 상황도 조금 나아져 종종 비싼 선물을 사주시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와 특별한 날에는 파네토네보다 맛있는 케익을 사 먹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경험일수록 강하게 남는 탓인지 내 머릿속엔 언제나 '크리스마스=파네토네'라는 나만의 공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제대로 된 파네토네를 좀처럼 맛보기 어려웠다. 당시까지만 해도 특이한 해외 베이커리는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한 예쁜 케익을 사 먹었어도 파네토네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르고 어느샌가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해외 베이커리를 접하기 한결 쉬워졌다. 이제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은 부쉬 드 노엘이니, 슈톨렌이니, 호텔 케익을 쉽게 주문하는 시대가 됐다. 나 역시 사회인이 되고 스스로 돈을 벌면서 이제는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지 않고도 내 돈으로 그런 빵들을 사 먹었지만, 언제나 파네토네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잊고 있던 파네토네를 한정 판매한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바로 주문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에 파네토네를 먹는구나!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신혼집에서 파네토네를 나눠 먹으며 잠시 어릴 적의 추억에 빠졌다.
파네토네 (직접 촬영)
항상 좋은 추억만 가득했던 어린시절은 아니었지만, 곱씹어 보면 나에게도 행복했던 추억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의 사이가 아직 괜찮던 시절 가족과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가 캠핑을 한 추억, 유치원 때 피아노 콩쿨에서 꼴지를 했지만 혼나지 않고 잘했다고 따뜻하게 안아주던 엄마...어린시절이 한없이 아프고 시리게 느껴질 때는, 내 자신이 가엾게 느껴질 땐 좋았던 추억도 함께 떠올리려고 한다. 물론 억지로 좋은 감정만 가지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과거의 아픔에 함몰되어 있기보다는 좋은 것을 취하고 앞날의 행복 비중을 높이는 게 나만의 방식이다.
이제는 나 역시 크리스마스를 맞아 내 아이에게 선물을 사 주는 어른이 됐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그 옛날의 우리 부모님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아서, 아이를 데리고 크리스마스 기념 여행을 할 수도 있고 매년 선물을 어렵지 않게 사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세대의 많은 부모들, 성장환경이 풍족하지 않았던 어른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올해도 잘 지내 왔다고, 늘 좋지만은 않았고, 어쩌면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늘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파네토네 속 건포도처럼 잘 들여다보면 달콤했던 순간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날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