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어디든 간에

by 혜성

살인자의 얼굴을 하고
우리가 남겼던, 이 사랑스러운 것들을 봐
꽤나 조용하고 한적한 모습이야.
이제 이곳에서는
더 이상의 살육은 없고
더 이상의 사랑도 없어.
이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적막함을 뒤로하고
어딘가에
애틋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행을 떠나자.
우린 할 일을 다 했잖아.
최선을 다해 미워했고
최선을 다해 증오했고
최선을 다해 혐오했고
최선을 다해 서로를 죽였으니
우리의 일은 끝이 났어.
언젠가 보았던, 악당이 착해지는 바보 같은 결말을 가진 영화처럼
결국엔 우리도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
후회는 하지 말자.

우리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린
최선을 다해 미움받고,
최선을 다해 증오 가득한 얼굴을 마주하고
최선을 다해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고
최선을 다해 죽음을 맞이했을 테니.

온 힘을 다해 우리가 저지른 악행들을

전부 어쩔 수 없었다며 합리화한 후
다 잊고
어딘가에
애틋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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