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식어가는데,마실 줄 몰라요
#13. 가족사진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명절날 민망함을 뒤로한 채 세뱃돈을 받았던 걸 빼면 올해는 중요한 일정이 두 개나 있다.
하나는 남자 친구 부모님과의 만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험이다.
둘 다 긴장되는 일이고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놔야 결과에 대해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산'은 그저 '산'일 뿐이라지만 더 크고 어려운 '산'을 뽑으라면 나에겐 그의 부모님과의 만남이다.
객관식 시험처럼 정답도 없고, 합격인지 불합격 인지도 알 수 없으니 고난도의 면접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깨끗한 용모와 친절한 태도로 임한다면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초대받은 그의 집으로 향했다.
'왜 하필 집으로 초대하셨지?'라는 의문과 함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물따귀'를 맞는대도 보는 이들이 없어 덜 창피할 수 있을 거라는 웃긴 상상도 해본다.
심호흡 두 번과 함께 크고 높은 아파트 꼭대기 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나를 데려다 주기를 주문하자마자,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어서 와, 기다렸어"
"하.. 나 어때? 괜찮아? 부모님이 좋아하시려나?"
"긴장했구나, 괜찮아. 다 괜찮고 예뻐. 들어가자"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현관문 앞으로 들어섰다.
"엄마, 아부지, 연주 왔어요" 들뜬 목소리로 나를 소개하는 그의 앞으로 고급스러운 실내복을 입고 계시는 두 분이 나오셨다.
"오느라 고생했어요. 들어와요. 어서요."
"처음 뵙겠습니다. 임연주라고 합니다." 인사를 드린 후 살짝씩 보이는 그의 집은 한눈에 봐도 부유해 보였다.
화이트와 골드로 조화된 장식품들과 가구들 사이로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이 보였다.
두 분은 기품 있는 태도로 나에게 말을 건네시고 음식도 대접해주시며 '왜' 하필 집으로 초대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묻지 않아도 먼저 얘기해주시니,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갔고 그는 신나 하며 한참을 내 옆에서 떠들어댔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방금 본 '가족사진'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화목해 보이는 가정, 가족사진을 벽에 걸어두는 친밀함...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족여행은 가 본 적 없고 그나마 명절에도 온 가족이 모여있는 시간은 1~2시간... 그렇다 보니 가족사진 한 장 찍어보지 못했다. 나에게 '가족사진'이란 곧 화목한 가정의 상징이었다. 그가 이렇게 넓은 집에 고급스러운 그릇들을 내놓지 않았더라도 '가족사진' 하나만으로 나와 그의 승패는 결정지어졌다.
떠나는 마지막까지 나를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두 분을 뒤로 그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두 시간 숨 막혔지?"
"아니야,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했어. 부모님... 참 좋으시더라. 너무 화목해 보이고 부럽던데?"
나의 질투심에 그가 조심스레 브레이크를 건다.
"그래 보였어?"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오랫동안 숨겨두었다던 비밀 애기 하나를 꺼냈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별거하셨다는 거, 아버지가 이혼 후 돈 벌려고 했던 일들, 아버지 홀로 육아하시며 견뎌냈던 어두운 시간들, 지금의 새어머니와 한 집에 살면서 적응해나갔던 시간들, 형이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찍었던 가족사진....
"나처럼 힘든 어린 시절 보낸 사람 본 적 없지?" 그는 멋쩍게 웃으며 제법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더라고... 다들 나더러 걱정 없이 산 것 같다는데.. 누가 알겠어.. 내가 얼마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서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 자기가 우리 집 와서 너무 좋았어. 우리 아부지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거 처음 봤는데...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더라고. 그동안 아부지가 고생했던 게 보상받는 거 같아서"
그의 비밀 애기는 한 동안 나의 심장을 울컥거렸다.
사실 나는 '화목한 가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
주말이면 여행을 다니는 집?
가족사진이 한쪽 벽에 걸려있는 집?
그런 거라면 그도 우리 집도 화목한 가정이 아닐 것이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했던 우리 아빠, 20년 동안 '독박 육아'를 했던 우리 엄마
하지만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오는 날에는 꼭 우리 남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사 오셨던 아빠,
가족들 생일이면 손수 호박떡을 지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엄마,
만약 하늘 저 먼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바라볼 때, '화목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
오히려 화목한 가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섣불리 아는 척했던 순간들이 후회스럽다.
'부의 상징'이 외제차에 명품백이 아니듯,
'화목한 가정의 상징'이 가족사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