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돈으로 하는 기부의 쓴 맛
겨우내 말라있던 가지마다 푸른빛이 도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오려나 보다.
언제나 그러하듯 사계절은 그냥 찾아오지 않았다.
'연애하기 좋은 봄, 놀러 가기 좋은 여름, 독서하기 좋은 가을, 이불속이 제일 따뜻한 겨울'
저마다 이름표 하나씩 달고 개성 넘치는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다.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란 게 있을까 싶지만 나에겐 뜨거웠던 여름과 추웠던 겨울이 집중하기 좋았었다.
여름이면 도서관 밖을 나가봤자 흐르는 건 땀이요, 솟아오르는 건 짜증이니 시원한 에어컨 명당자리를 찾아 의자와 한 몸이 되는 게 최고의 휴가였다. 겨울만 되면 심해지는 수족냉증 덕분에 양말 위에 수면 양말을 덧대어 한 치수 큰 어그부츠를 신어도 겨울의 냉기는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나마 따뜻한 실내에 존재하는 것만이 내가 살길이었기에 엄마가 사 준 비싼 양모 방석 위에서 겨울을 났다.
그런데 이제는 봄이다. 비염이 심한 사람도 사연 많은 벚꽃엔딩을 간직한 자들도 코 끝을 간지럽히는 향기에 마음이 들뜨는 계절이 찾아왔단 말이다.
살랑이는 바람마저 두 다리를 걷게 만드는 신기한 마법 같은 날에, 나도 잠시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연주야"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기들과 잘난 후배들마저 취직해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은 몇 없는데 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랬다.
"연주 맞구나. 오랜만이다 우리 연주"
친절하면서도 사람 냄새 가득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학년 선배, 지선 언니였다.
"어머, 언니 잘 지냈.... 언니 머리가..."
안부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나의 시선은 선배의 머리카락으로 쏠렸다. 분명 길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였는데 지금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지 왜 그녀의 머리카락이 이 지경이 됐는지 물어볼 수 없을 정도로 선배의 눈동자는 맑고 반짝거렸다.
선배는 행여라도 내가 걱정할까 봐 안심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가늘고 긴 두 손으로 본인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으며
"어때? 잘 어울려? 동현 선배는 이제 샴푸 값 안 들겠다며 부러워하던데? 웬만한 남학우 보다 잘생겨 보이지?"
"언니, 괜찮아요?"
나는 여전히 선배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연주 너, 내가 얼마나 먹보인지 알지? 신입생 환영회 때 혼자 치킨 한 마리 다 먹은 여학우로 유명했잖아 내가. 그 후로 별명도 치킨이 됐지만 머... 훗훗. 이래도 안 웃네 우리 후배님?"
그녀의 괜찮은 척하는 모습이 안심은커녕 더 불안해져만 갔다.
"...."
"아휴, 걱정 마... 나 사실 지금 동아리 애들이랑 총장실 앞에서 투쟁 중이야. 삭발도 하고 단식투쟁도 사흘째라, 꼴이 영 그렇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선배가 후배한테 좋은 애기는 못 해주고... 아 참 너 요새 뭐 하며 지내? 늘 궁금했는데."
그때,
"김지선, 지선아, 가자"
"아... 미안, 나 이제 가봐야겠다. 애들이랑 교대해줘야 돼서... 연주야, 나도 힘내고 있을 테니 너도 힘내. 어깨도 쫙 펴고 인마. 자, 받아"
한 발짝 뒤에서 선배를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는 허둥지둥 뛰어갔다. 힘없어 보이는 두 다리를 누가 잡아끌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멀어져 갔다.
나의 안부를 전하지도 끝인사도 맺지 못한 채 우리의 만남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눈 깜짝 사이에 끝나버렸다.
멍하니 서서 그녀와 나 사이의 추억들을 꺼내보는데 한 손이 자꾸 축 늘어뜨려진다. 선배의 머리카락에만 신경 쓰느라 한 손에 매달려있던 검은 봉지를 보지 못했다. 그녀가 건네준 봉지를 열어보니 초콜릿이 한가득이다.
대학교 1학년, 자유의 문이 열리길 고대하며 버텼던 고3 시절이 온통 거짓으로 가득했음에 억울함을 느끼며 교정에 누워있었다.
"여기서 뭐해? 신입생 연주 맞지? 나 김지선이라고 해. 네 윗선배."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 여기 좋지? 나도 가끔 여기 와서 하늘 보곤 하는데... 오늘은 진짜 하늘이 맑네, 휴"
한 학년 선배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그녀는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한 학기 내내 내가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에 대해 터놓았었다. 갑자기 생겨버린 자유에 대한 불안, 교수들의 비상식적인 수업 태도, 취업을 위한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둘러싸인 강압, 장학금을 놓고 벌이는 학우 간 경쟁 등...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던 선배는
"그게 정상이야." 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뗘 보였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저더러 좋은 대학 가놓고 쓸데없는 소리만 한다던데요..."
"그렇지, 다들, 너는 이 우주에서 단 한 사람인데, 네가 느끼는 걸 똑같이 느낄 수 없지... 그래서 난... 조금 웃기게 들리겠지만 말이야, 정상인 척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비정상 인척 살려고 해. 이미 교수들도 선배도 동기도 나더러 '돌아이'라고 하더라고." 이번엔 선배가 한참을 말을 이어갔다.
"혹시 연주 너는 기부해본 적 있어? 요새는 그것도 자기소개서에 쓰는 스펙이라고 하더라.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해외아동 후원하기였어. 그래서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 했던 게 매달 3만 원씩 한 아이를 후원했는데, 처음 몇 달간은 뿌듯하더라고. 남들과 달라 보이고, 뿌듯해 보이고... 그러다 우연히 '학생운동'하는 학우들을 본 적이 있어. 그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을까? 그냥 얌전히 학교 다니면 안 되나? 저렇게 한다고 밥이 나오나? 별의별 흉을 보았는데, 내가 어느새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알게 되었어. 내가 지금껏 돈으로 기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내가 돈만 내고 학교를 다니고 있어다는 걸..."
"학생운동 이요? 막 시위하고 데모하는 그런 거요?" 무지하게도 내가 아는 학생운동은 교과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 속 모습이 전부였다.
"뭐.. 그런 것도 하겠지. 훗. 그리고... 기분이 더러울 때는 초콜릿 하나 먹어주면 싹 풀려. 좀 가벼워진다고나 할까?"
선배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두 개를 꺼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초콜릿을 건네주는 기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6년 만에 재회하였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에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정상적'으로 살고 있었고 선배는 '비정상적'이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나는 '돈'으로 하는 기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자기소개서 한 줄을 작성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봉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다. '기부는 좋은 것'이라는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분명 봄내음 맡으러 나왔는데 쓴맛이 느껴진다.
어쩌면 사계절 내내 맛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덜렁거리며 한쪽 손목에서 춤을 추는 검은 봉지만 봄을 느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