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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ul 19. 2021

행복한 공황장애



작년 이맘때 즈음부터였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 없는 순간이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되는 가 싶기도 하고 역류성 식도염이 도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픈 걸로는 거르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누려왔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정말 이러다 숨이 멈출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로 비슷한 시간이 되면 비슷한 통증으로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 이거 미치겠네.'


하루는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그냥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는 일이 무서워지면서 내 몸의 변화에 대해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그러던 아내가 어느 날 블로그를 보더니 나와 똑같은 증상의 이야기를 읽어보라며 스마트 폰을 건넸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여성은 직장 생활을 하는 도중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몇 달을 쉬면서 회복하는 과정을 남겼습니다. 여성은 다행히 빠른 치료를 통해 그리 길지 않은 과정 속에서 회복을 했고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아내의 권유로 정신과를 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정신과가 동네에 이렇게 많이 있었다는 사실과 정신과 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일부러 동네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조용한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 사람도 없어서 상담받기 딱 좋은 병원이었습니다.





대충 상황 설명을 마치니 담당 의사는 공황장애가 맞지만 그리 심한 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공황장애라는 병 명도 믿기지 않았지만 여기서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가슴을 부여잡고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습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헉헉 대다가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앉아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처방은 매주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방에 따라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합니다. 관련 약이 많아 이렇게 치료를 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약과 용량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의사의 설명에 마루타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모습에 간절한 믿음으로 증상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이건 정신병이 아니라는 작은 의심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럴 리 없다고, 정신병 환자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내 몸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다른 병이 자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다음 치료를 받기 전에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저기 잘 들여다보면 무언가 몰랐던 병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검진을 받았습니다. 나 같이 심한 불면증도 수면 내시경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약이 들어간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수면실에서 걸어 나왔더니 간호사들이 모두 쳐다봅니다. 수면 내시경이 처음인지라 길게 자면 숙박료 비슷한 게 더 나올까 봐 그랬습니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한 분이 뒤늦은 충고를 건넸습니다.


"더 누워계셔도 되는데......"


미리 말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휘청거리며 대기실에 앉아 검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데 떨리던 감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빨리 집에 가서 전날 저녁 이후 텅 빈 위장을 채울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불리고 찾아간 담당 의사는 폐, 식도, 위장은 깨끗하다면서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자세한 검진 내역은 2주 후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집으로 오는 길의 발걸음이 제법 가볍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내 질병은 공황장애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옅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생각해보니 한 가지 걱정을 덜게 된 셈입니다. '이제 천천히 공황장애만 치료하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검진 내용과 과정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말없이 열심히 들어주던 아내는 내 표정이 재미있었는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괜찮대서 행복해?"

"내가 행복해 보여?"

"표정이 좋아 보여서."

"그런가 봐. 난 행복한 공황장애 환자일지도 몰라."

"그런 게 어딨어. 환자는 환자지."

"나쁜 소식을 먼저 듣고 좋은 소식은 늦게 들어서 그런가?"

"아니, 나쁜 소식은 작게 듣고 좋은 소식은 크게 듣는 거지."


멋진 말은 자기가 다 합니다. 어떤 생각이 맞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매만지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불안하지 않아 좋습니다.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이 불안이 아닌 희망이라는 점, 그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려는 용기가 생긴다는 점에서 나는 지금 행복한 공황장애 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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