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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Mar 14. 2021

이혼을 고백하는 마음




2년 전 즈음이었습니다. 친한 후배에게서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어옵니다. 아무 때나 괜찮다고 하니 퇴근 후 집 근처로 찾아오겠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반가움과 걱정을 섞어 퇴근 후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씩 나누었습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근황을 주고받다가 후배는 털어 내야 할 이야기의 주제를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형, 저 이혼하려고요."


아무리 친해도 가정에 충실히 살다 보면 서로의 삶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결혼하고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끊긴 소식의 구간도 길었습니다. 후배는 그동안 아내, 그리고 아내의 가족과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고 이제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해야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좀 편해지고 싶어서요."


이 말을 끝으로 후배는 자신의 상황 설명을 마쳤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에 딱히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내심 내 생각을 듣고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조금 더 깊은 마음을 들어보았습니다. 상처가 깊어 보였습니다. 위로를 건넸습니다. 서로 묵직한 한 숨을 내뱉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잘했어. 앞으로는 더 잘 살 거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나 봅니다.


"형이 처음이에요. 다들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하던데......"


진한 커피 한 모금 꿀꺽 삼키면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정해진 대본처럼 결혼은 원래 그런 거라며 그때만 지나면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후배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내 안에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입을 닫고 고개를 숙인 후배에게 그저 잘했다고 응원하는 말을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긍정적인 응원으로 후배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후배는 마음이 조금 풀어졌는지 내게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사실 마지막으로 형 생각을 듣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형은 형수님이랑 너무 잘 지내고 있잖아요. 볼 때마다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고...... 형 생각을 꼭 들어보고 싶었어요."


뜬금없는 칭찬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긍정의 미소는 아닙니다. 이윽고 내뱉은 답변은 조금 서늘하게 이어졌습니다.


"넌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어?"


"형이 못 지내면 누가 잘 지내는 거예요. 주변에 정말 사이좋은 부부라고 소문이 났는데......"


살며시 머리가 아파옵니다. 나도 모르게 쇼윈도 부부가 된 것 같습니다. 가식은 없었는데 오히려 가식이 없어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 부부도 보기와는 다른 부분이 많아."


부담스럽지만 힘든 고백을 꺼낸 후배를 위해 나 역시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대화에 올려놓았습니다.


"한 때는 싸운 날이 안 싸운 날 보다 많았던 것 같아. 후회한 적도 많았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었거든. 그런데 서로 울고 불고 싸우면서도 두 사람의 공간 안에서 풀어내려고 하다 보니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러다 웃을 일이 생기면 웃고, 화나면 또 싸우고. 그렇게 폭탄을 안고 살아갔었지. 그런데 있잖아......"


잠시 대답에 뜸을 들였더니 후배는 입으로 가져간 커피 잔을 허공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빨리 답을 하지 않으면 팔이 아플 것 같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화가 날 만한 행동을 했는데 화가 안나는 거야.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던 내가 모른 척하며 넘어 간 거 있지? 생각해 봤거든. 그냥 이해가 되더라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 그때 깨달은 거지. 그때가 아마 결혼하고 10년 즘 되었을 거야."


"형수님도 형의 마음을 알아요?"


"아내도 그때 느꼈던 거지. 이 사람도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고. 언젠가 아내가 그러더라고 참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얼마나 허무하면서 부끄럽던지......"


후배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한 번 더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형, 솔직히 말해주세요. 형도 제가 이혼을 안 했으면 해요?"


"모르겠어.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찬성도 반대도 못하겠어."


"왜요? 형은 그래도 해답을 찾았잖아요."


"해답을 찾은 건 아니야. 문제 앞에서 조금 편안해졌을 뿐이지. 나는 아직도 내가 잘 살 거라는 확신은 없어.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자고 다짐할 뿐이야."


혼란스러워하는 후배를 위해 내 속에 있는 솔직한 심정을 풀어냈습니다.


"네 이야기가 듣고 난 순간 쉽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더 이상 둘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지. sos를 치는 것과 같잖아? 다시 한번 노력해보기를 바라면서도 너를 다시 그 현실로 밀어 넣지도 못하겠다. 아무튼 지금과는 달라져야 하는 건 분명하니까. 이혼도 진지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그 안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까?"


후배의 표정은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위로하듯 부연 설명을 남겼습니다.


"너의 마음이 편해지는 곳으로 가. 다만 두 사람 사이에서 더 이상 상처는 만들지 않기를 바라. 상대방도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야 서로 편해지지 않을까? 결론이 어디로 흐르던 나는 너의 결정을 지지해줄게."






타인의 삶, 가까운 친구의 삶이라도 내가 모르는 영역이 참 많습니다. 인연의 깊이는 30년이 넘었지만 내가 아는 시간은 불과 2, 3년이 될까 싶습니다. 그런데 어찌 다 아는 것처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 한 달 후의 내 모습도 장담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결혼은 아무리 뒤적여 봐도 맞출 수 없는 큐브 같습니다. 거의 다 맞춰가는 것 같아도 꼭 하나가 다른 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억지로 맞추려다 보면 모든 것이 다시 엉켜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엉키고 맞추기를 반복하다 보니 맞추지 않은 한 조각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부부의 사랑 같습니다.


우리 부부는 올 해로 결혼 20주년을 맞았습니다. 10년 동안은 갈등이 참 많았었는데 이후 10년 동안은 다섯 손가락에 담길 만큼 다툰 적이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컴퓨터 하드에 저장된 파일 하나부터 비상금까지 모두 서로에게 열어 놓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뭔가를 발견하면 화가 나기보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어갑니다. 정 궁금하면 물어보고 대답을 받아들입니다. 나중에는 귀찮은지 서로의 영역은 눈치껏 덮어주고 삽니다. 비밀은 정말 비밀이 되었고 비상금은 정말 비상금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관심이 자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비밀스러운 부분이 생길 때마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먼저 발견합니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만한 비밀은 만들지 않습니다. 욕망은 조금씩 줄이고 서로의 미소를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확신이 들지는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부부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나약하고 사랑은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고만 다짐할 뿐입니다. 사랑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볼지라도 항상 붙어 있음을 마음에 담고 살아갑니다. 






후배는 그 후, 몇 달 뒤에 이혼했습니다. 연락이 뜸하더니 얼마 전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잘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거리두기가 잠잠해지면 같이 보자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후배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잘했다고 말해준 것 같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길을 가는 후배가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냥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길이 틀린 길은 아니잖아? 자신 있게 걸어가. 그 길은 너만이 갈 수 있는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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