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Jun 24. 2021

음식에 담긴 추억



바삭하게 튀긴 치킨은 흑인 노예들의 음식이었습니다.

주인들이 기름을 뺀 닭 가슴살 요리를 먹고 나면 남겨지는 부위들을 모아 

기름에 튀겨 뼈 채로 씹어 먹을 수 있게 요리했습니다.

이렇게 요리한 닭튀김은 고된 노동에 필요한 체력을

유지시켜주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곱창을 ‘호루몬’이라고 부릅니다.

호루몬은 버려진 물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간 한인들이 먹을 것이 없어

일본인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곱창을 주어와

요리해 먹었다는 의미가 담긴 음식입니다.


음식에 대한 유래는 다양합니다.

정확한 유래가 어디서 나왔는지 불 분명한 음식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힘겹게 만들어 먹었던 음식들이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대부분 특별한 추억과 함께 합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보다 군대에서 훈련 중에 먹었던 라면,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먹었던 크림빵, 과거 시집살이로 지친 우리

어머니들이 부엌 한편에서 드시던 누룽지 한 그릇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던 시절에 즐겨 먹었던 음식은

거꾸로 다시 보기도 싫은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수제비가 그런 음식입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수제비는 우리 가족의 주식이라 불릴 정도로 자주 만났습니다. 

정확한 레시피를 알지는 못하지만 멸치 우린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다가 넣은 수제비는 며칠에 한 번은 거르지 않고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수제비에는 간혹 우린 멸치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칼슘 보충을 위해 멸치를 그대로 남기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린 마음에 그 징그러운 멸치 대가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배고픔에 몇 숟갈 먹기는 했지만 저는 그 수제비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 힘든 시절에도 수제비 끓이는 냄새가 풍겨 날 때면 

오늘은 그냥 굶고 싶다는 생각으로 배아픔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라면 살 돈도 없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수제비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아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한 번도 수제비를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골목을 지나다 수제비가 메뉴에 적힌 식당을 발견하고는

수제비를 돈을 내고 사 먹어야 하는지를 두고 아내와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짜장면은 내 영혼의 음식으로 남았습니다.

아마도 짜장면 한 그릇에 500원 정도 하던 시절에 처음 맛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노란 면을 거무죽죽한 소스에 비벼 먹는 짜장면은 어린아이에게 신세계를 알려주었습니다.

달콤 짭조름한 소스에 입안 가득 퍼지는 밀가루 면의 풋내는 

싱거운 밥과 나물로 끼니를 이어오던 소년에게 천국 같은 맛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입맛에 맞지 않으시다면서 한 그릇을 싹 비운 어린 아들에게

한 젓가락 덜어주시기도 하셨지만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짜장면을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지오디의 '어머님께'를 들으면서 그때 어머니는 나를 위해

짜장면을 드시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정말로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지금도 잘 드시지 않으십니다.

괜찮습니다. 약간의 감동 파괴는 있을지언정 지금껏 건강한 모습으로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매일 감동을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나이가 들어 더부룩한 위장을 달래는 일이 일과의 하나가 된 지금은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비우기도 벅찬 몸이 되었습니다.

밀가루 음식과 강한 조미료의 조합이 위장염과 과민성 대장 증세에 시달리는 

중년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짜장면을 좋아해서 맛있는 중국 음식점을 종종 찾아가기도 합니다.

이제는 곱빼기가 기본이라 여길 나이는 아니지만 느긋하게 한 그릇 비우면서

그 시절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짜장면의 여운을 뒤늦은 나이에도 찾아가곤 합니다.






요즘 들어 가장 부러운 사람 1순위를 꼽으라면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극적이고 부담이 가는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그 흥분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럽습니다.

아직은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싶지만 때론 이끌리는 욕망 위에 인생을 잠시 올려 두고 싶어 집니다.


'때론 사랑하다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

-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항상 같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지만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음식을 먹었습니다.

속은 좀 고되지만 그래서 더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오늘도 먹고, 사랑하고, 속은 부글거립니다.


세상의 모든 음식들은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는 음식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뿐 아니라 

맛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담겨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매일 세 번, 혹은 한두 번 식탁 위에서 추억을 만들어 냅니다.

허겁지겁 비워 낸 한 끼의 식사일지라도 그 속에는 고단한,

혹은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음식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제는 그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추억이 담긴 당신의 음식 이야기에 마음이 갑니다.

살짝 균형을 잃더라도 좋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음식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천천히 그 추억에 다가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이야기를

혀 끝으로 느끼면 나에게도 그 사랑이 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튼튼한 소화기능은 잃었지만 나이를 먹고 새롭게 깨달은 생각이 있습니다.

음식은 사랑이며 마음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추억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식탁을 나누며 기나긴 대화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한 분들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짧지 않은 글의 핵심은 사실 단순합니다.

밥 사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 (faul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