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유
나이를 먹을수록 답답하고 힘든 일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젊을 땐 그까짓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은 제법 무겁게 느껴집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은 늘어가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쉬이 내려놓을 곳이 없습니다.
그대로 짊어진 채로 걸어갑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의 한 편에 쌓인 짐이 나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내 절반은 그렇게 내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은 불편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무심히 흘려버렸던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는 요즘입니다.
'내려놓음', '벗어 버리기', '던져 버려라', '떨쳐 내기' 등등
이런 글들이 마음에 담기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제법 나이를 먹은 것 같습니다.
도전이나 투쟁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제는 하나씩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담아갑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늘어가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나는 이제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받아들입니다.
아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져 내리는 감정에 자신만 잃을 뿐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아직 나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으면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지......
손가락에 힘도 빠지고 걷기도 벅찬 나이가 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미래는 생각보다 더 어둡습니다.
나는 내 미래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살지 못한 인생에 대한 대가라 하지만
내 의지로 태어난 세상도 아닌데 억울하다는 감정도 스쳐갑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는 미움입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저주하고 미워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방금 전까지도 누군가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나에게 미움은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마음입니다.
조심스럽게 세어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신뢰와 애정을 쌓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벽을 만들고 어두운 감정으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미워하기에 편리한 세상입니다.
sns만 봐도, 쏟아지는 뉴스만 끄적여도 미워할 거리가 넘쳐납니다.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저주하며 삶을 마무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떠오르는 마음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품에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눈물과 미소로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좋습니다. 이제 사랑을 선택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마음에 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미움은 시시각각 저절로 떠오르지만 사랑은 아무리 노력해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제법 큰 노력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선행되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조건에 집중해 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가?'
조건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나의 사랑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진행되지 않은 사랑은 미움이나 무관심으로 돌아갑니다.
이기심이라 변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사랑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을 결심합니다.
조건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건을 충족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상대방을 살피고 고려하는데 에너지를 쏟아냅니다.
늘상 있는 인간관계에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지며 관계를 설정합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이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조건에 대한 반사일 뿐입니다.
이제야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알기 위해 어릴 적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사랑을 품기 위해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았던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사랑을 찾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가능성이 넘치는 아이였으니까요.
진짜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미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군요.
지워지지 않는 마음은 그대로 둔 채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미움을 조금씩 지워나가겠습니다.
사랑에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사랑하기에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에 사랑할 뿐입니다.
미움보다 사랑으로 더 채워가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내게 오는 이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넓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 온전히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마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이다.' - 마더 테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