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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Aug 21. 2021

늦여름의색

사진 / 본 인



눈치 없는 땀방울

서늘한 바람 타고

목덜미로 흐른다


아직은 따가운 햇살

그늘을 따라 걷다

초록의 캔버스 앞에 섰다


지난 더위에 

흘러내린 녹음이

물결 위를 덮었다


늘어진 가지 끝으로

노오란 가을 색이

고개를 내민다


이른 시간을 아는지

살며시 흔들어

손 끝에 핀 가을을 감춘다


반가우면 좋으련만

나의 한 해도

머지않았다고

숨죽여 속삭이는 

실바람 소리가 들린다






늦여름, 


더위는 한 풀 꺾인 것 같아도 햇살 아래 열기는 여전합니다.

축 늘어진 나뭇가지가 지친 내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여름은 멈춰 선 시간 같습니다.

사람도 자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가끔씩 올라오는 태풍이

빠르게 태엽을 감아 주듯 지구를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여름의 끝 자락,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계절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두 계절을 보냈을 뿐인데 한 해의 반 이상이 흘렀습니다.

계절은 시간을 감춥니다.

나의 일 년은 두 계절이 아니라 이제 한 계절만 남았습니다.

겨울이 오면 이듬해를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계절은 속이지 않습니다.

내가 비겁하고 게을렀을 뿐,

시간은 성실히 내 호흡을 따라 흘렀습니다.


온통 초록으로 눌어붙은 그림 안에는 노랗고 붉은 가을을 숨기고 있습니다.

여름 내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낸 나뭇잎은

땅으로 내려앉기 전 마지막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내 시선은 축제를 너머

저물어가는 한 해의 텅 빈 나뭇가지를 그리고 있네요.


이쯤 살았으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계절의 변화를 즐기며 살면 될 것을,

여전히 쓸데없는 욕심과 기대로 눈을 가립니다.


사진 한 장에 가득 채운 찐득한 녹색을 마음에 담아봅니다.

저 안에 감추인 화려한 가을의 퍼포먼스를 기다립니다.

시간이 어디로 흐르던, 마음은 여유롭게 자연이 주는 축제를 즐기며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서도 희망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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