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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Aug 31. 2021

마라카낭의 비극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2년 만에 브라질에서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브라질은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우승을 장담하고 있었습니다.
난적 아르헨티나는 기권했으며 조별 예선에서 강팀으로 분류되던
잉글랜드와 이탈리아가 모두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결승은 조별 예선을 거친 네 나라가 리그전을 거쳐
최고 성적을 거둔 팀이 우승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미 2승을 거둔 브라질은 1승 1무의 우루과이에게
무승부만 거둬도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기 전 연설에서는 브라질의 우승을 미리 축하한다는 말이 나왔고,
경기가 열리는 마라카낭 경기장 주변은 이미 우승을 축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경기는 우루과이의 2대 1 역전승으로 끝났습니다.

마라카낭 경기장은 적막이 흘렀습니다.

2명의 관중은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2명은 그 자리에서 총을 쏴 자살했습니다.

브라질 전역에 조기가 게양되었으며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날 입었던 흰색의 유니폼은 참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후 브라질 대표팀은 흰색을 버리고 지금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영화 타짜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


이 대사 역시 승리를 확신하다 한 방 먹게 된 도박의 고수에게 주인공이 남긴 한마디였습니다.


잘 될 것 같은 일이 어긋날 때가 많습니다.

포기하고 주저앉았는데 희망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살면 살수록 삶은 예측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집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를 좋아합니다.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이 집을 나가자

사람들이 안쓰럽게 한 마디씩 합니다.

그 말이 나가 암컷 한 마리를 데려오자 좋겠다며 수근 댑니다.

말을 타던 아들이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안타깝다고 위로를 건넵니다.

전쟁이 일어나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징집되어 죽거나 부상을 입고 돌아오지만

다리를 다친 아들은 징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비극과 희극은 종이의 양면 같습니다.

한쪽에는 비극을, 다른 한쪽에는 희극을 적어 두고

매일 아침 종이를 하늘에 날려 나오는 대로 삶이 이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비극이 이어지는 날이 계속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몸도 마음도 끝없이 무너져내리는 감정을 느낍니다.

집 근처 식당이 하나 둘 문을 닫습니다.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하는 마음으로 위로를 받다가도

어두 컴컴한 밤거리를 걸어 돌아오는 길은 넉넉한 우울감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타인의 비극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비겁한 생각을 반성하곤 합니다.






예상은 예상일 뿐입니다.

우리 인생에 확실한 미래는 죽음밖에 없습니다.

비극 또한 언제나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8년 뒤, 브라질은 첫 번째 월드컵을 들어 올렸고

지금까지 다섯 번의 월드컵 우승을 기록한 최다 우승국이 되었습니다.

마라카낭의 비극 이후, 브라질은 다섯 번의 축제를 즐겼습니다.


사실 비극이냐 희극이냐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비극이던 희극이던 미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처참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기운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유로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글은 누구보다도 나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나는 비교적 비관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텅 빈 식당에서 밝은 모습으로 환대해 주시는 동네 떡볶이 할머니

네가 잘못 한 게 아니라며 굿윌 헌팅의 명대사로 위로해 주시는 어머니

코로나로 힘겹게 수업하면서도 열심히 자기 일은 알아서 하는 막내 딸

성실하게 답변해 주시면서 학생들에게 열과 성의를 다하시는 딸의 담임선생님

그리고 당신은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그치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까지

모두 내 삶을 희극으로 인도하는 천사들입니다.


내가 받은 위로가 당신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 나은 하루가 되리라 믿습니다.

예측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인생은 그래서 더욱 스펙타클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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