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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Dec 03. 2021

주는 사랑 받는 사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이 아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운전기사였던 송강호가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래도 사랑하시죠?"


이선균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마땅치않게 대답합니다.


"아이, 그럼요. 사랑하지요. 사랑이라고 봐야지."


가족은 사랑이 당연하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라함은 사랑으로 이어진 존재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사랑해서 아이를 낳고, 사랑해서 키워냅니다.

사랑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단순한 포장일 뿐, 

깊은 이면에는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가족이 많습니다.


노년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하듯이 나 역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순종적이셨고 아버지의 말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게 당연한 삶을 살았습니다. 순종이 사랑이었고 엄한 체벌이 관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성년이 되어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나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배운 것은 가부장적인 가족의 모습입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모순과 불만 투성이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을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그게 사랑이고 자식된 도리라 배웠지만 세대가 다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성장하는 동안, 나는 다르게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해왔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내면에도 알게 모르게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뭐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불쾌한 마음이 들었고

내 아이들이 불편한 행동을 할 때는 꾸짖는 한 마디에

바로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잘 키우고 있고, 저들은 잘 못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자랐고 아버지는 조금씩 혈기를 잃어 갑니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듭니다.

피하는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그럴꺼라 생각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꾸짖는 만큼 그 이상으로 사랑을 표현한 적이 없었습니다.

훈계만으로도 충분한 사랑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이선균의 대사처럼 부모의 질책도 사랑으로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아이들의 모습이 불만 가득했던 내 어린 시절의 시점에 다다르자

아이들의 불안한 생각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내 생각이 너무나 비틀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버지의 역할이 주어지고 나서는 똑 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다그쳤습니다.


뒤늦은 깨닳음, 소중한 시간들을 잃고 난 뒤였습니다.

아내에게 힘겨운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잘못 되어 있는 것 같다고......

아내는 괜찮다고 합니다.

잘못된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은 것 뿐이라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발맞춰 같이 걷자고 응원의 말을 남깁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잘못되어있음을 알기까지가 가장 어려웠던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생각보다 모든 일이 쉬웠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정성을 다해 들어주며, 기다리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합니다.

내 입장이 아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모든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는 동안 아내가 옆에서 든든히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쉬울 수 밖에요. 때론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응어리 진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잘 참았다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큰 아이가 성인 된 이후, 우리 부부는 조금씩 아이들을 떠나 보낼 순간을 준비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사랑을 줄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직 막내가 성인이 되려면 한 참 남았지만 함께 있는 동안 낮은 자세로

어떤 결정을 하던지 묵묵히 지지해주는 부모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둘 만의 오붓한 노년을 꿈꾸며 행복한 상상으로 미래를 채웁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채우기에 가능한 그림입니다.


그래서 정말 사랑하냐구요?

잘 모르겠습니다. 

연륜이 쌓여갈수록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되어갑니다.

나를 채우는 것이 사랑인지 나를 버리는 것이 사랑인지 여전히 애매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알아서 잘 살겠지요.

나 역시 그렇게 부모님의 관심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설령 잘 살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힘들면 함께 아파하고, 잘되면 박수쳐 주는 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습니까?


인생을 좀 더 단순하게 살기로 다짐합니다.

돌아보니 쉬운 길을 너무 어렵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게 뭐 그리 힘들다고 지금 껏,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가정을 꿈꾸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돌아서지 않고 사는 것 보다

충분히 나은 선택이라는 믿음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이건 정말 사랑이라 봐도 되겠지요?

아니라도 남은 삶은 그냥 이렇게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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