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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Nov 21. 2021

장인어른



가족에 대한 글이 참 많지만 장인어른을 이야기하는 글은 가뭄에 콩 나듯 합니다.

일단 남성의 글이어야 하고, 결혼한 남성이어야 하고, 종종 부딪히거나 알콩달콩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남자 대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부딪히기도 알콩달콩하기도 참 어려운 존재입니다.


어느 집이든 시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을 만하고

사위 사랑은 장모사랑이라거나 장모님이 씨암탉을 잡아주신다는 말이 있지만

장인어른에 대한 이런저런 유행어나 속담 같은 경우는 딱히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찾아보면 이런 속담이 있었나 싶은 글을 만날 뿐 장인어른과 관련된

유행어라고 하면 "나 이 결혼 반댈세." 정도만 생각나네요.

물론 이 말은 장모님이 하셔도 무방한 이야기가 됩니다.


사위가 장인어른을 평가한다거나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남성이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되는 남자 어른은 확실히 부담스럽습니다.

20대 초반 군대에서 만난 중대장이 20대 후반임을 알고도 그 벽이 너무 높게만 느껴졌는데

아내의 아버지라니 남자가 평생 만나는 어른 중에 이보다 높은 계급적 차이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아내의 어머니는 어미 모자를 넣어 장모(母)님이라 부르며 가족임을 표현하지만

장인어른은 사람 인(人) 자를 넣어 가족 관계성을 찾기 어려운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그 어렵고 불편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인기 없는 글일지 몰라도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인어른과 둘째 처제 / 사진은 본인



결혼하고 20년이 흘렀지만 장인어른과의 관계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성품이 좋으셔서 붙임성 없는 사위의 불편한 모습에도 너그러이 넘겨주시고

워낙에 무뚝뚝하시고 말씀이 없으신 충청도 어르신의 표본 같은 분입니다.

관계의 발전이랄 게 있을 수 없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못돼 먹은 사위의 게으름도 한몫하고 있지만

그나마 뵐 때마다 대본에 쓰여있는 것 같은 안부와 인사가 오고 가면

특별히 나눌 이야깃거리는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간혹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면 보수적인 성향을 느낄 정도일 뿐,

가족에 대한 배려인지 정말 말씀이 적으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일정한 선을 넘지 않으시며 대화는 굵고 짧게 끝을 맺습니다.

본인의 의견을 가족에게 강요하지 않으시며 가족의 이야기는 무표정한 표정 속에서도

경청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단순하면서 따뜻한 분입니다.


이쯤 되면 이 글이 장인어른께 바치는 헌사쯤으로 생각되시겠지요?

저는 그런 거 없습니다.

아내도 잘 들어오지 않는 브런치를 아내의 가족들이 알리도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글은 아내의 가족 누구에게도 소비되지 않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인어른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며칠 전, 아내의 생일날,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 때문입니다.


생일날 오후 아내는 장인어른께 문자를 받았습니다.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돈 5만 원을 보냈다며 맛있는 저녁 사 먹으라는 평범한 문자입니다.

평범하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저도 부모님께 그런 글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내에게도 그 문자는 매우 특별했나 봅니다.

집 근처 카페에 자기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먹으러 가자며 억지로 끌고 가더니

고즈넉한 창가의 자리에 앉아 굳이 손을 뻗어 장인어른이 보내주신 문자를 제 눈앞에 내밀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이런 아빠 모습 처음 봐."


'그래요. 나도 처음 봐요.'라고 마음속으로 맞장구치고 케이크를 떠서 입에 넣어 봤는데

달큼한 기운과 함께 약간의 짜증이 머리 끝까지 밀려옵니다.

맛난 거 먹으라고 5만 원을 보내 주셨는데 이 비싼 케이크를 내 돈으로 계산했으니 말입니다.


스푼을 내려놓으며 입맛에 맞지 않는 케이크는 아내에게 밀어주었습니다. 혼자 다 먹을게 분명하지만 아내는 케이크가 아닌 장인어른의 문자에 기분이 업 되어 있었습니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아빠가 이렇게 달콤하게 생일 축하를 해 주신 게 처음이야."


부러우면 부럽다지만 그 문자가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싶었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거품 가득한 라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창 밖에 걸린 샛노란 나뭇잎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이어진 아내의 질문은 장인어른에 대한 아내의 감동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나이 든, 어른이, 스스로,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걸까?"



아내는 어쩌면 그토록 바라던 아버지의 모습을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만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움, 혹은 섭섭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던 아내에게

일흔이 넘은 아버지의 새로운 변화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저에게 저런 글을 보낸다면

누군가 아버지를 납치하고 돈을 요구하지는 않는 건지 의심이 먼저 들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은 그 힘든 일을 해 내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세월을 맞아

스스로 자신을 묶어왔던 가부장적인 사고를 벗어 버리고

딸들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하고 달콤한 선물을 남기는 스윗 한 남성이 되셨습니다.

놀랄 만한 일이지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현실로 여겨지는 시대에서 장인어른은 스스로 그 장벽을 넘으신 것입니다.

제가 모르는 장인어른과의 더 긴 세월을 함께한 아내에게

아버지의 작지만 놀라운 변화는 감동을 넘어 믿을 수 없는 사건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부러웠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있는 아내가 더욱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소소한 결심이 생겼습니다.

장인어른은 단 한 마디의 훈계나 꾸지람을 남기지 않고도

무던한 사위에게 인생의 행복에 대한 지혜를 친절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장인어른'

항상 멀게만 느껴졌던 가족,

아내의 아버지......

평범하고 소박한 그분의 삶이 누구보다 크게 다가온 날,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그 사랑의 결과를 물었습니다.


"5만 원으로 뭐 먹을 거야?"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언제까지나 장인어른의 딸과 함께할 거니까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5만 원의 사랑,

함께 하다 보면 언젠가는 맛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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