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Jul 04. 2024

치료 중에 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겠지요.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따금 공감할 때가 있습니다.

한 번 길들여진 성격과 행동은 바꾸려 해도 쉽게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굳이 다른 사람을 가져다 들이댈 필요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증명합니다.

좀처럼 불안하고 날카로운 생각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항상 예민하고 늘 고민에 쌓여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험기간, 혹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유난히 민감한 성격 탓에 날카로운 감정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다행히 감정에 솔직해도 용서가 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꾸지람, 친구들과의 다툼, 혹은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성장하는 동안에도 예민한 성격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다가가기 어렵지만 섬세하기도 하고 일에 정성을 다하기도 합니다.

친해지기 어렵지만 막상 친해지면 관계가 오래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는 친구들 모두 나에게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항상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는데 막상 친해지니 재밌고 다정다감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런 예민함이 나이가 들수록 삶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 늘어가면서 예민함은 불안을 넘어 좌절로 이어집니다.

다들 그 정도면 괜찮다는 일도 불안해서 확인해야 하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안심하거나 기대감을 갖지 못합니다.


마음 한쪽에 실패할 경우를 항상 그리며 살아갑니다.

실패로 인한 실망감이 두렵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나를 패배자로 보지는 않을까 타인의 시선이 더욱 신경 쓰입니다.


마음에 작은 상처가 생겼습니다.

타인의 시선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가 점점 자라 몸을 부여잡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깨달았습니다.

상처를 자라게 한 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었습니다.


무던하게 흘러 보내야 하는 것도 마음에 꼭 담습니다.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 것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단어는 크게 듣고 긍정적인 대답은 외면합니다.


작은 상처는 커다란 구멍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만한 구멍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담아 보려 해도 구멍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합니다.

더 이상 스스로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약을 먹기 시작 한 지도 3년이 넘었습니다.

종류만 조금 바뀌었을 뿐 먹는 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약을 먹지 않는 일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마음에 난 구멍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불안하면 심장이 크게 뛰고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이 거칠어지지만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으면서 놀란 아이 달래듯 감정을 추스르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삶에 대한 간절함이 감사로 흐릅니다.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내일은 마음에 담지 니다.

하지 못한 것에 마음 쓰지 않고 하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합니다.

설령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게으른 날들이 때론 최선을 다하는 어느 날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스스로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감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감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안한 기운을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늘 좋은 감정으로 살아가기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감정은 나쁜 감정을 흘러 보내고 나서야 만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로 합니다.

날카롭고, 불안하고, 예민하고, 고민이 깊은 나를 사랑합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욕심은 내려 놓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타이르며 잃을 것도 없는 삶에 자족합니다.


부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같이 아파하고 분노에 공감하며 함께 울 수 있는 감정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사랑을 배우기 위해 글을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