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마음을 털어내고자 가까운 하천 공원에 앉아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멍하니 한 참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데 조그만 꼬마아이가 내 옆에 앉았습니다.
두 사람 정도 앉을 거리였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 제법 잘 들렸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는 엄마에게 꼭 들리라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나에게도 그 이야기가 들려야 하는 건 또 다른 곤욕입니다.
엄마의 결정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조금 짜증 나기도 해서 듣다가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아이의 한 마디에 머리를 띵 하고 한 대 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난 그래서 전혀 행복하지가 않아!"
아이는 무슨 일로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또 어떻게 하면 아이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아이의 엄마를 잠시 훔쳐보니 걱정과 염려가 전해져 오는 기분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통해 느끼는 행복이 그 모든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기에 우리는 아이를 키우지요.
그런 아이에게서 저런 말을 듣게 되면 엄마는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지만 진짜 행복이 아니라면
엄마는 아이를 통제해야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에게 진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아이가 참 부러웠습니다.
지금 내 마음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전할 수 있는 아이의 현실이 부러웠습니다.
나 역시 지금 그리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불행을 누구에게도 고백하기 어렵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잃지 말아야 하며
친구들도 저마다 힘든 상황을 털어놓느라 내 이야기는 밑바닥에 놓입니다.
그래서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며 무거운 마음을 씻겨 내려 보내는 중입니다.
그 상황에 만난 아이의 외침은 내 마음을 크게 울렸습니다.
아이를 바라보자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칫 1초만 더 흘렀으면 아마도 외쳤을지 모릅니다.
'나도 그래.'라고요.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빛이 걱정되었는지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아이를 조심스럽게 타이릅니다.
"알았어. 엄마가 아빠한테 얘기해 볼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풀리지 않은 문제와 불안을 꽁꽁 싸매고 살아갑니다.
"나는 지금 행복하지가 않아!"
"나는 지금 행복하고 싶어!"
라고 울부짖어도 달리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인기를 끌고 있나 봅니다.
인생은 고통에 비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너무나도 짧습니다.
물살을 뒤로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안타깝지만 모든 불안을 흘려보내지 못한 채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불안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불행한 하루를 또다시 맞이해야 합니다.
갑자기 아이의 아빠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이의 아빠는 아이에게 행복을 찾아 줄 수 있을까요?
나에게도 그런 아빠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불행을 한 방에 날려줄 수 있는 슈퍼맨 같은 존재가 그립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
빨리 먹고 독서실 가야 한다는 수험생 아들 때문에 허겁지겁 고기에 양념을 재고 구워 냅니다.
저마다의 양을 채워 낸 아이들은 조용히 식탁을 벗어납니다.
잘 먹었다며 행복한 표정으로 인사합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슈퍼맨도 자신의 불행은 어쩌지 못하지 않을까?'
조금은 위로가 되었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