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Mar 16. 2022

남들만큼


"남들만큼 살려면 열심히 벌어야지요."


오래간만에 만난 후배에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응원해주자 돌아온 대답입니다.


'남들만큼'


이 만큼의 삶이 어느 정도 크기의 재산과 수익을 말하는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따로 후배에게 묻지는 않았습니다. 

혹시나 그 크기를 재는 과정에서 섭섭한 마음이 들까 봐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후배를 위하는 마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 봐 대답을 듣지 않은 것 같습니다.

후배가 생각하는 남들과 내가 생각하는 남들의 간격이 친밀한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금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남들만큼 산다는 크기를 어느 정도로 정해 두고 계신가요?

수도권 아파트 한 채, 2000cc 이상의 자동차 한 대, 연봉은 대략 8천만 원 수준, 2억 이상의 금융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남들만큼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수치에 자괴감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딱 나네'하고 생각하셨으면 당신은 상위 10% 안에 드는 자산가입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2021년 기준 가구당 자산 평균은 약 5억 정도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마저도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자산 증가이며 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은 4억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혹시나 그래도 자괴감을 느끼시는 분이 계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저희 가구는 평균 5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차도 없습니다. 가진 것도 없지만 부채도 많지 않아 그저 입에 풀칠하고 사는 수준입니다. "햐, 저 인간 겁나 게으르게 살았구먼."이라고 말씀하셔도 딱히 변명할 말은 없습니다. 아무튼 내 상황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가난마저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남들만큼'이라는 말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후배가 생각하는 남들과 내 기준이 다를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 기준을 채우고 나서도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도 수도권 아파트 한 채, 8천만 원의 연봉, 억대의 금융 자산을 갖고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수준에 이르고 나서는 연봉 1억 이상의 수입, 10억 대 금융자산, 강남의 아파트 한 채가 눈에 들어오겠지요. 그럴 것이 자명합니다. 저는 매우 욕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실제로 평균 이하의 내 삶과 달리 친구들은 매우 잘 살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만 뚝 떨어져서 5인 가구 평균 소득 인정액 50% 이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사는 친구들은 자녀도 하나, 혹은 둘인데 나는 왜 셋이나 낳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그런 고민을 한 적은 없습니다. 남들이 대신 고민을 해 주더라고요.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사냐고 물어봅니다. 숨 쉬고 산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남들만큼'


이 말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두려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은 내가 들어가 보지 않고는 전혀 알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남들만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딱 나 만큼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나 만큼의 행복, 나 만큼의 여유, 나 만큼의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비교를 요구합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을 계산하고 정확한 위치의 좌표를 찍어줍니다.

정보 과잉의 시대라고도 하지요.

알 필요 없는 이야기까지 쏟아지는 정보에 노출되어 살아갑니다.


몇 해 전부터 내 손에는 이전에 없던 물건이 하나씩 쥐어져 있습니다.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었는데 언제부턴가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건에 내 인격의 일부를 떼어내 각인시킵니다.

물건이 나이고 내가 물건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남들만큼 살 수 없음에도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속은 빈 깡통인데 최신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있으면 남들만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욕에서 자유로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나 만큼 비교하며 사는 사람이 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탓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모두 나에게 비교를 강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욕심은 내 안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내가 원인이 아니었음을 핑계대기 위해 세상을 비난했을 뿐입니다.


나에게 세상은 길고 긴 선으로 보였습니다.

그 긴 선 어딘가에 내가 위치해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내 앞에 있고, 또 누군가는 한 참 앞에 서 있습니다.

물론 내 뒤에도 누군가가 있겠지요.

그렇게 비교하며 살다 보니 지금은 내 위치가 너무 확실하게 드러나 버렸습니다.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들만큼 살 수 있을까요?


고민 끝에 그냥 생각 자체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 하나를 심기로 했습니다.

지금 서 있는 내 위치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나무를 심으면 나는 더 이상 지금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이 정도에 만족하고 이 정도가 내 모습임을 인정하며 

그냥 지금 있는 이곳에 뿌리내리고 성장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필요는 없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면 누군가는 또 뒤로 밀려 날 테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욕심이 생겼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 심은 나무가 조금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무가 자라고 가지가 뻗어 갈수록 풍성한 나뭇잎이 큰 그늘을 만들어 주겠지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 큰 그늘 아래서 편안히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여나 나무에서 탐스런 열매가 떨어지면 더욱 좋겠습니다.

함께 나누어 먹을 이웃들이 있으니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남들만큼 사는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답변이겠지요.

대신 남들과 함께 사는 방법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야겠습니다.

잘하면, 정말 잘하면 나도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