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찾아들었습니다.
화면으로 '어머니' 세 글자를 확인했습니다.
가족의 전화는 반가움과 염려가 교차됩니다.
반가움 뒤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어집니다.
"네, 어머니."
살갑지 않은 아들은 평범한 인사를 건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몸은 좀 어떠니?"
아들은 조금 허약하고 작은 체구를 가졌을 뿐인데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 대하듯 언제나 건강 상태를 먼저 챙깁니다.
70대 노인네 보다 안 좋아봐야 얼마나 안 좋다고 먼저 건강 상태를 묻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아무튼 똑같은 레퍼토리가 이어지는 걸 보니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아 안심입니다.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었습니다.
얼마 전 형님네 가족이 다녀갔나 봅니다.
삼겹살을 사 들고 와 황급히 구워 먹고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잘 드셨어요?"
아들은 어머니의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물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니 모인 식구가 여섯인데 주먹만큼 사 오면 누가 먹는다냐. 나는 하나도 못 먹고 애들만 구워 줬지."
갑자기 웃음이 터졌습니다.
정말 섭섭하셨나 봅니다. 손이 큰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도 있지요.
이 정도면 될까 싶어 사 오지만 유난히 배가 고프면 10인분을 사도 모자랄 때가 있습니다.
섭섭하신 마음 뒤로 어머니의 그날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식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배고프지 않다고 미리 말씀을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면 남은 고기를 드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은 고기는 없었고 어머니는 그날 저녁 남은 야채와 김치에 밥만 드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섭섭한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마냥 주고플 때만 있는 건 아닙니다.
배려를 받고 싶은 날도 있고 대접을 받고 싶은 날도 있으니까요.
우리 부부도 간혹 저녁 식사로 삼겹살을 결정하고 난 뒤에는 얼마나 사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온 가족이 다 모이면 세근을 사도 부족합니다.
아들 둘은 삼겹살 귀신입니다.
큰 아들은 한 쌈에 고기 세 접이 기본입니다.
그래서 삼겹살을 먹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먼저 연락을 합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을 건지, 오늘은 배가 어느 정도 고픈지 확인 과정을 거칩니다.
그날 가족의 먹성 컨디션에 따라 두근 반에서 세근 사이로 구매합니다.
요즘은 삼겹살이 금값이라 고기 먹자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습니다.
그럼에도 식당에서 사 먹는 것 보다야 푸짐하고 싸게 먹을 수 있으니 종종 삼겹살 파티를 합니다.
형님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한 끼 식사를 하겠다고 찾는 형님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동생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 불효자입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 위로를 남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고기를 보내 드리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대답이 걸작이십니다.
"야. 놔둬라. 다음 날 마트 가서 고기 사 먹었다. 소고기 꽃등심으로."
삶의 모토를 바꿔야겠습니다.
'인생은 어머니처럼'
절대 우울하게 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