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Sep 05. 2023

당신의 욕망은 소중합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무기력해지고 웃는 날이 줄어듭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우울증입니다.

설령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이 정도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이란 것이 두 살 먹은 어린아이 같아서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그냥 우울한 마음이 아니란 것이죠.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숨이 멎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공황장애라고도 부르는 순간이 오면 약을 찾아야 합니다.

약을 먹은 지 오래됐지만 답답하고 불안한 기분만 가셨을 뿐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나를 무겁게 만듭니다.


시간이 흐르고 전혀 나아지지 않은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나에겐 아무런 욕망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치료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울증은 나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내 욕망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깨달은 부분은 식욕입니다.

1년 전부터,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어졌습니다.

돼지갈비와 치킨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냄새를 맡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제법 유명한 소고기 집을 찾았습니다.

한 두 접 입에 넣고 동석한 친구들에게 맛있다는 인사말을 남긴 뒤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친구들의 즐거운 대화로 배를 채웠습니다.


아내와 함께 회전 초밥집을 찾았습니다.

아내는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식탁 위에 올렸지만 

내가 선택한 초밥은 아내가 고른 초밥 접시 위에 놓인 한 쌍의 초밥 중 다른 한 조각이었습니다.

왜 자꾸 자기 접시의 초밥을 먹냐고 타박을 하지만 대답해 줄 말이 없었습니다.

내 앞에 두고 싶은 초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갖고 싶은 물건도 없어졌습니다.

컴퓨터 조립이 취미인지라 신제품이 나오면 없는 살림에도 돈을 모아서 멋지게 세팅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는 4년 전에 맞춘 부품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이기든 지든 감흥이 없습니다.

국가 대항전 경기가 있어도 결과만 확인할 뿐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지 않습니다.

취미 활동을 권하는 친구에게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무기력은 무엇이든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이 욕망이 사라져 가는 저주 앞에 놓인 분도 계시겠지만

반대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고통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흔히 중독이라 부르는 질병은 욕망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지요.

우울증과 중독을 함께 경험하는 무서운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텅 빈 상태에서 아무 유익이 없는 욕망을 채워갑니다.

이런 경우에는 입원 치료를 권유받게 됩니다.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무서운 욕망이라는 전차를 우리는 어떻게 적절한 속도로 조절할 수 있을까요?


욕망의 크기와 무게는 저마다 다르지만 욕망이 추구하는 목표는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넓게 보자면 행복이겠지만 시선을 좁혀 보자면 즐거움(樂)이겠지요.

오늘 나의 미소가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욕망은 서로 공유하고 응원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취향, 취미, 좋아하는 것과 이루고 싶은 꿈은 혼자만의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나누는 과정을 거친다면 제법 괜찮은 방향으로 한걸음 나아가게 도와줍니다.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욕망은 서로의 거울로 비춰 볼 때 더 멋진 나를 만듭니다.

소통은 생각을 아름답게 다듬고 인생을 풍성하게 설계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욕망을 찾아낼 수도, 무모한 욕망의 한계를 설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반 고흐 作, 별이 빛나는 밤



우울증은 분명 질병이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질병도 아닙니다.

헤밍웨이,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비트겐슈타인 같은 천재들도 겪었던 질병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재벌급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세 형제를 자살로 잃었습니다.

브런치 작가님이신 정신과 박사 나종호 선생님의 글에서

역사상 최고의 수영 선수였던 마이클 펠프스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가 우울증을 이겨 낸 뒤 남긴 고백은 저에게도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알아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요." - 마이클 펠프스


많은 사람들이 괜찮지 않은 감정을 경험합니다.

잘 이겨 내셨다면 다행이지만 여전히 힘든 시간이라면 이렇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괜찮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까?

저는 괜찮고 싶습니다.

그래서 약을 먹고, 운동하고, 가족과 대화하고, 친구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글을 씁니다.

글로써 당신의 마음에 문을 두드립니다.

나도 당신도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신의 욕망은 소중합니다.

지금, 오늘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작은 성취로 행복하셨다면 저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 역시 당신의 미소로 잃어버린 욕망을 찾아가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안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